"물건에 담긴 역사·희소성이 수백억 '가치' 만들죠"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September 29일, AM 05:01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감정의 핵심은 결국 그 물건이 ‘얼마나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지녔느냐’에 있습니다.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라면 수백억원에 거래되는 것도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죠.”

권용우 코베이옥션 이사가 경매품을 감정하고 있다(사진=코베이옥션).
권용우 코베이옥션 이사가 경매품을 감정하고 있다(사진=코베이옥션).
온라인 경매사이트 코베이옥션에서 15년간 감정을 담당해 온 권용우 이사는 28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경매품의 가치를 가르는 핵심으로 ‘희소성’을 꼽았다. 물건의 상태를 보여주는 보존 등급과 함께 대중문화사에서의 상징성, 이전 소유자의 유명세, 시장의 수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값이 매겨진다는 설명이다.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카드 검정 전문 기관 등에서 진위 여부와 상태를 인증받은 포켓몬 카드의 시장 가치는 약 90억달러(약 12조 1800억원)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지난 2월에는 ‘피카츄 일러스트레이터’ 카드가 구매자 수수료를 포함해 1649만 2000달러(약 230억원)에 팔려 주목받았다. 특히 이 카드는 미국 감정기관 PSA로부터 최고 등급인 ‘GEM MT 10’을 받은 유일한 한 장으로 알려졌다.

경매시장에서는 상식적인 물건값을 뛰어넘는 거래가 끊이지 않는다. 고가에 낙찰된 경매품들을 살펴보면 △최초 △마지막 △유일한 등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이유’가 수백억원의 가격을 만들었다.

‘마지막’이라는 수식어가 몸값을 끌어올린 대표적인 사례는 워런 버핏과의 자선 점심이다. 2022년 당시 마지막 경매의 낙찰가는 1900만100달러(약 275억원)까지 치솟았고, 올해 5월에는 스테픈·아이샤 커리 부부와 함께하는 새로운 형식의 자선 점심 경매가 다시 열려 900만100달러(약 122억원)에 낙찰됐다. 마이클 조던과 코비 브라이언트의 친필 사인과 NBA 유니폼 로고가 함께 들어간 ‘듀얼 로고맨’ 카드는 전 세계에 단 한 장만 제작됐다는 점에서 2025년 1293만2000달러(약 187억원)에 팔렸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그래픽=이미나 기자).
◇국내 경매, 역사·희소성 따라 가격 달라져

국내 경매시장에서는 우리 역사의 굴곡과 시대정신을 담은 유물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친일 인사 이완용과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의 글씨다. 당대 명필로 평가받았던 이완용의 글씨는 대체로 수십만원대에 거래되는 반면, 전문 서예가가 아니었던 안중근 의사의 유묵은 최근 27억원에 낙찰됐다.

권 이사는 “수집품의 가치는 누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만들었는지, 그 안에 어떤 삶과 시대정신이 담겼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면서 “안중근 의사의 유묵에는 독립운동가로서의 신념과 뤼순감옥에서 죽음을 앞두고 남긴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최초’라는 상징성이나 역사적 의미도 수집품의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다. 실제 코베이옥션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로 꼽히는 이인직의 ‘혈의 누’ 재판본이 2억5000만원에 낙찰됐고, 정덕본 ‘삼국사기’는 권당 약 3억원, 이승엽 선수의 600호 홈런볼은 약 1억5000만원 선에서 평가되거나 거래됐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그래픽=이미나 기자).
통상적으로 경매품은 입수 경위와 소유 이력, 보존 상태, 문헌 기록과 과거 거래 사례 등을 종합해 진위와 가치를 판단한 뒤 희소성과 시장 수요를 반영해 시작가를 정한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한국 행사에서 직접 서명한 지포스 RTX 5090 그래픽카드는 ‘♡ KOREA’ 문구와 현장 증정 이력이 반영돼 시작가 7000만원에 나왔다. 1463년 세조가 간행한 ‘묘법연화경언해’ 권1은 사실상 유일한 교정본으로 평가돼 시작가 1억3000만원이 책정됐다.

가격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경매품도 있다. 1700년대 양반가의 한 할머니가 아직 글을 읽지 못하는 손녀를 위해 여성이 갖춰야 할 덕목을 한글 궁서체로 직접 필사한 책이 대표적이다. 책에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이 글을 보며 할머니를 기억해달라는 마음까지 담겼다. 수백 년 전 한 가족의 삶과 애정을 전하는 이 궁서 필사본은 시작가 1000만원에 나왔다.

경매품의 가치는 가격뿐 아니라 그 물건에 담긴 역사와 사연, 이를 뒷받침하는 객관적 근거를 함께 살펴야 한다. 권 이사는 “아직 우리나라에는 미술품·고서·수집품을 모두 아우르는 단일 국가공인 감정사 자격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중요한 물건일수록 한 사람의 권위에만 의존하기보다 실물과 문헌 기록, 비교품, 복수 전문가의 의견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감정은 ‘어떤 근거로 판단했는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그래픽=이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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