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과 동정 거부한다"… 유쾌하고 불온한 반란[문화대상 이 작품]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September 29일, AM 06:01

[안경모 연출·극작가] 연극 ‘크립스’(데이비드 프리먼 작, 강보름 연출, 2026.9.16~20, 모두예술극장)는 장애인보호작업장에서 일어나는 뇌성마비 장애인들의 작은 반란을 그린 작품이다. 크립스(creeps)의 뜻처럼 불쾌하고 섬뜩한 모습도 있지만, 전체 분위기는 유쾌하고 통쾌하다.

연극 '크립스'의 한 장면.(사진=모두예술극장)
연극 '크립스'의 한 장면.(사진=모두예술극장)
반란의 방식은 화장실로의 탈출이다. 적은 수당으로 상자를 접고, 벽돌을 만들고, 카펫을 짜는 게 싫다. 장애인 고용과 복지를 위한 수단이라지만, 정작 자아실현 없는 강제 고역이다. 이들은 미술가, 작가, 목수 등을 꿈꾸지만, 장애인이라는 제약에 의해 능력주의 사회에서 밀려나 있다. 그리고 복지의 대상이 되어 작업장에서 통제받는 자신들의 모습에 ‘생매장’의 공포감을 느낀다.

화장실에서 나가지 않는 즉흥적인 일탈로 시작되지만, 이들은 어느새 자신을 화장실에 가둔다. 유일한 해방구이기 때문이다. 불만과 분노를 배설하고, 조롱과 비하를 쏟아낸다. 들춰내기 껄끄러운 일들을 쉽게 꺼낸다. 비루함과 저속함도 상관없이 자조와 자기비하로 킬킬댄다. 불쾌와 상쾌가 끝없이 순환한다.

이들의 궁극적 바람은 연민과 동정의 거부다. 비장애인들이 가진 선민의식, 위계를 전제한 자선사업들을 한껏 조롱한다. 시혜에 기반한 보호작업장을 비롯해 핫도그, 아이스크림, 풍선, 색종이로 치장한 기업 자선행사가 장애인을 ‘불쌍함’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일에 분노한다. 서른 넘은 성인들이 유아가 되어줘야 하고, 박수를 쳐줘야 하고, 시혜자들에게 안겨줘야 하고, 사진을 찍혀줘야 하는 ‘사업대상’이 되는 일을 비난한다.

소수자들에게 덧씌워진 ‘연약함’의 껍데기도 던진다. ‘선한 이웃’이라는 기대도 거부한다. 그리하여 스스로 불온함을 장착한다. 세상을 한껏 조롱할 수 있는 주체가 되고, 보호와 연민의 대상이 아닌 자기존엄을 승인하는 일이 목표가 된다. 비로소 장애인이 대상이 아닌 주체로 등극한다.

연극 '크립스'의 한 장면.(사진=모두예술극장)
연극 '크립스'의 한 장면.(사진=모두예술극장)
이 유쾌하고 불온한 반란이 흥미로운 것은, 그 주체가 뇌성마비 장애인에게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장애인에 대한 시혜적 시선, 소수자에 대한 대상적 시선, 이들을 주체로 포용하지 않고 주변화하고 고립화시키는 정책에 맞서기 때문이다. 이는 능력주의 틀에서 추락한 비장애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점에서 연극 ‘크립스’는 사회시스템에서 밀려나 자기존엄을 확보하지 못하는 우리 모두에 대한 연대의 손길이기도 하다.

2019년 처음 이 희곡을 접했을 때, 한국 상연에 난점이 많을 것이라 예상했다. 우리에게 뇌병변장애인 배우가 제한적이고, 비장애인의 장애재현은 작의와 어긋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제작과정과 운영에 소요되는 부담도 크다고 느꼈다. 그러나 어느새 2025년 낭독을 거쳐 2026년 실연에 닿았다. 장애연극계의 많은 역량이 모였고(물론 모든 배역을 뇌병변장애인 배우로 캐스팅하지는 못했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모두예술극장)의 역할도 컸다.

또한 많은 과제도 남겼다. 여전히 순화된 표현수위, 장애당사자의 신체성에 기반한 미장센의 구축 방식, 제한된 장애연극인의 인력풀 등. 그럼에도 연극 ‘크립스’는 소수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한껏 조롱할 수 있는 힘을 공유한다. 농지거리는 해방되지 않은 존재가 해방되려는 갈망에서 부여하는 감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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