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9년 물랭 루주 홍보물. (출처: Jules Chéret,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889년 10월 6일,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 기슭의 블랑슈 광장에 카바레 '물랭 루주'(Moulin Rouge)가 문을 열었다. 사업가 조제프 올레르와 샤를 지들러가 부르주아 상류층부터 가난한 보헤미안 예술가까지 누구나 한자리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춤을 즐기는 공간을 기획하면서 탄생한 곳이다.
'붉은 풍차'라는 뜻의 물랭 루주를 단숨에 파리의 명소로 만든 것은 격렬하고 도발적인 프랑스 전통 춤 '프렌치 캉캉'이었다. 화려하고 풍성한 페티코트 치마를 휘날리며 다리를 높이 차올리는 댄서들의 파격적인 몸짓은 기존의 엄격하고 위선적인 사회 규범을 뒤흔들었다.
라 귈뤼, 잔 아브릴 등 전설적인 무용수들이 무대를 휘저었다. 관객들은 관능적이면서도 해방감 넘치는 이들의 율동에 열광했다. 캉캉은 당시 억압받던 대중의 욕망을 분출하는 상징적인 몸짓으로 자리매김했다.
물랭 루주는 당대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에게도 거대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는 거의 매일 밤 이곳 테이블에 앉아 무희들의 생생한 표정과 무대 뒤편의 고단한 일상을 화폭에 담았다. 그가 제작한 물랭 루주 홍보 석판화 포스터들은 근대 상업 예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관객석에서는 귀족과 노동자가 어울렸고, 문인과 화가들이 이곳에서 자유롭게 교류했다
번영의 이면에는 퇴폐와 상업주의라는 거센 비판도 뒤따랐다. 보수적 지식인들은 물랭 루주를 도덕적 타락의 온상이라 손가락질했다. 여성 댄서들의 삶은 화려한 조명 뒤에 가려진 채 빈곤과 알코올 중독으로 얼룩지기 일쑤였다. 게다가 1915년 대형 화재로 건물 전체가 소실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1921년 재건된 이후 영화, 뮤지컬, 현대적 레터 쇼로 변모하며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했다.
물랭 루주는 계급 간의 엄격한 장벽을 무너뜨리고 억압된 인간 본연의 자유를 분출시킨 문화적 혁명의 출발점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환락의 장소가 아니었다. 근대사 속에서 예술과 대중문화가 충돌하고 융합하며 피워낸 가장 뜨거운 파리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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