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이남이 서울 종로구 학고재갤러리 개인전 ‘시어무형 청어무성’에 건 자신의 미디어 작품 ‘미시산수-금강내경’(2026, 480×220㎝) 앞에 섰다. 발광다이오드(LED) 디스플레이, 단채널 영상, 사운드로 꾸린 작품은 겸재 정선의 ‘금강내산’(1743·보물)을 8폭 병풍회화로 확장하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미생물의 세계를 겹쳐 완성했다. 전시된 다른 미디어 작품과 동일하게 9분 23초로 맞춰 제작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런데 난데없이 저들이 출현한 배경이 말이다. 산세가 첩첩이 쌓인 수려한 산수화다. 넓고도 깊은 그 산과 물, 나무를 백그라운드 삼아 작은 생물체가 이리저리 노닐고 있다고 할까. 정리하자면 저 프레임은 고즈넉한 수묵화 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미세생물의 세상을 내보이고 있다. 생생한 움직임까지 그대로를 옮겨낸 ‘한 폭의 미디어아트’로.
이이남의 ‘미시산수-조춘도 no.2’(2026, 170×97.9㎝). 중국 북송 때 화가 곽희의 ‘조춘도’ 위에 담양 용소폭포에서 건져낸 한 방울 물에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미생물의 세계를 얹어 완성한 미디어 작품이다. 9분 23초짜리 단채널 영상에서 미생물은 쉼없이 꿈틀댄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으레 떠올려지는 그 이름이다. 이이남(57). 지금 시대에서 미디어아트를 말할 때 일순위에 올릴 작가다. 압도적인 위치를 점한 백남준(1932∼2006)의 뒤를 잇는 ‘제2의 백남준’이란 수식이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결은 다르다. 백남준이 ‘전위’에 기댔다면 이 작가는 ‘전통’을 기반하고 있으니까. 옛 그림에 디지털기술을 올려 태워 시대와 시절, 사조와 풍경을 바꿔내는 일이다.
이이남의 ‘미시산수-세한도’(2026, 109.3×191㎝).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1844·국보) 속 노송의 몸체에 붙은 미생물이 마치 함께 호흡하는 듯 쉼없이 움직인다. 9분 23초짜리 단채널 영상으로 제작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이남의 ‘미시산수-세한도’(2026, 109.3×191㎝) 중 부분을 확대했다. 용소폭포에서 건져낸 미생물은 오른쪽에 적힌 제호 ‘세한도’(歲寒圖)와 ‘우선시상’(藕船是賞)이란 문구에까지 타고 오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금강전도’(1734·국보·왼쪽)와 이이남의 미디어 작품 ‘신-금강전도’(2009). 작가는 겸재의 고즈넉한 금강산 풍경을 전투기와 군용헬기가 날고 낙하산이 까맣게 쏟아지는 7분 14초짜리 단채널 영상으로 뒤바꿨더랬다. 이번 개인전에는 나오지 않은 작품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얼추 20년이 된 그때의 충격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 말이다. 이 장면 또한 적잖이 놀라울 터. 바로 그 작가가 멀리서도 보이는 거시세계를 반쯤 들어내고 눈을 비벼도 절대 볼 수 없는 미시세계에 들어섰으니까.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 미디어 평면·설치작품 등 15점을 꺼내 꾸린 개인전은 작가 작업의 변화, 아니 진화의 현장을 펼친다. 비단 ‘영화에서 다큐’로 장르를 바꾼 ‘밖의 변화’만을 뜻하지 않는다. 산수 자체에 대한 철학을 바꾼 ‘안의 진화’가 들어있단 얘기다. 전시명은 ‘시어무형(視於無形) 청어무성(聽於無聲)’. 중국 옛 문헌(‘국어’ ‘예기’ ‘사기’)에서 반복적으로 쓰이던 문구를 따왔다. 형체 없는 곳에서 보고, 소리 없는 곳에서 듣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말이야 쉽지, 이것이 과연 시각예술에서 가능키나 한 건가.
작가 이이남이 서울 종로구 학고재갤러리 개인전 ‘시어무형 청어무성’에 건 자신의 미디어 작품들 곁에 섰다. 작가의 왼쪽은 ‘미시산수-강정산색도’(2026, 170.5×97.9㎝), 오른쪽은 ‘미시산수-조춘도 no.1’(2026, 170×97.9㎝)다.
작가 이이남이 담양 용소폭포에서 건져낸 한 방울 물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이번 개인전에 내놓은 전시작들이 세상에 나오는 시작점이 된 작업이다. 갤러리가 준비한 작가 작업 영상 중 한 장면이다(사진=학고재갤러리·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이남 개인전 ‘시어무형 청어무성’ 전경. ‘미시산수-조춘도 no.2’(2026, 170×97.9㎝·왼쪽)와 ‘미시산수-인왕제색도’(2026, 84×146.5㎝)가 사선으로 마주보고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이남의 ‘미시산수-인왕제색도’(2026, 84×146.5㎝) 중 부분을 확대했다. 둥글거나 길쭉한, 또 투명하고 매끄럽게 생긴 미생물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가까이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1751·국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 모든 작업의 젖줄이 된 용소폭포를 그대로 옮겨온 ‘하나의 물, 여러 개의 풍경-용소’(2026)는 이번 전시에서 주연 이상의 주요한 조연이다. 흘러내리는 폭포수, 버티고 선 바위, 흔들리는 나뭇가지 등을 촬영해 다섯 대의 CRT 모니터에 나누고, 독립적인 미디어 작품으로 헤쳐 모았다. 모니터 탑을 담근 사각 프레임 속 찰랑이는 물까지 용소폭포에서 떠왔다고 했다.
이이남의 ‘하나의 물, 여러 개의 풍경-용소’(2026, 120×120×236.5㎝·오른쪽). 이번 전시의 출발점이 된 전남 담양 용소폭포를 촬영해 물, 바위, 나뭇가지 등으로 쪼개 5대의 모니터에 나눠 실었다. 작가는 “CRT 모니터는 광주비엔날레에서 빌렸다”며 웃었다. 건너편에 미디어 작품 ‘미시산수-추산행려도’(2026, 170.5×97.9㎝)와 ‘미시산수-설계어부’(2026, 170.5×97.9㎝)가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이남 개인전 ‘시어무형 청어무성’ 전경. 왼쪽으로 이번 전시의 출발점이 된 전남 담양 용소폭포를 촬영한 모니터 탑이 섰다. 물, 바위, 나뭇가지 등으로 쪼갠 각각의 풍경을 5대의 모니터에 나눠 실은 ‘하나의 물, 여러 개의 풍경-용소’(2026, 120×120×236.5㎝)이다. 오른쪽은 겸재 정선의 ‘금강내산’(1743·보물)을 8폭 병풍회화로 확장한 미디어 작품 ‘미시산수-금강내경’(2026, 480×220㎝)(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번 개인전이 작가세계의 분기점이 될 건 분명하다. 철학과 방식이 방향을 틀었다는 것 외에도 말이다. AI를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였다는 점에서도 단순치 않다. “모든 작업의 데이터와 정보를 AI에게 다 일려주고 끊임없이 대화를 하면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작품들”이라고 작가는 소개했다. 그런데 그 대화란 게 상상을 넘어선다.
가령 “정선이 현미경을 들여다본다면 뭘 그렸을까”를 묻는 작가에게 AI는 “산을 닮은 미생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또 하나의 진경을 봤을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현미경으로 생명을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란 질문에는 “작은 것을 확대하는 일이 아니라 보이지 않던 세계와 마주하는 일”이라 했고, “결국 ‘마이크로 산수’란 무엇인가”란 물음에는 “보이지 않는 생명이 지나간 시간을 오래 바라볼 때 비로소 나타나는 산수”란 답을 내놨다.
이이남 개인전 ‘시어무형 청어무성’ 전경. 왼쪽은 설치작품 ‘두 개의 세계’(2026, 200×60×120㎝)다. 반으로 나뉜 곽희의 ‘조춘도’와 작가의 ‘미시산수-조춘도’가 물이 반쯤 찬 수조 안에 들어 있다. 수면을 사이에 두고 다른 크기와 밀도로 이어진 ‘한 세상’이다. 오른쪽은 ‘부경산수-조춘도 no.1’(2026, 170×130㎝). 미디어 작품이 아닌 ‘회화’ 조춘도다. 장지에 프린트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