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캐나다 작가 앤 카슨 © AFP=뉴스1
202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캐나다 작가 앤 카슨(76)은 시와 산문, 고전문헌학과 현대 예술의 경계를 거침없이 허물며 현대 문학의 지평을 넓혀 온 독보적인 인물이다.
7일 오후(한국 시각) 스웨덴 한림원은 카슨을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호명하며 "고전적 전통과의 유희적 대화를 통해 현대 문학의 새로운 형식을 창조해 낸 대담하고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기린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1950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난 카슨은 1981년 토론토 대학교에서 '나는 증오하고 사랑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논문으로 고전문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수십 년간 여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시 창작과 번역 작업을 평생 병행해 왔다.
'빨강의 자서전' (한겨레출판사 제공)
카슨의 문학 세계는 고전문헌학자로서 단어의 어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지적 탐구와, 새로운 의미를 갈망하는 시인의 욕망이 만나는 접점에서 꽃을 피웠다. 그에게 고대 그리스 비극과 사포의 시는 단순한 옛 문헌이 아니라 그 자체로 독립된 창작의 원천이었다.
카슨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은 서로 다른 목소리를 충돌시켜 균형을 이루는 '입체적 시야'다. 1986년에 펴낸 장편 에세이 '달콤씁쓸한 에로스'는 고대 시인 사포의 시어를 길잡이 삼아 사랑과 고통이 공존하는 인간 감정의 역학을 탁월하게 해체하며 그의 문학적 기반을 닦았다.
'잃어버리지 않은 것들의 경제학'에서는 기원전 6세기 시인 시모니데스와 현대 시인 파울 첼란을 맞세우고, '비번인 시간의 남자들'에서는 역사학자 투키디데스와 버지니아 울프를 나란히 배치하는 등 파격적인 문학적 구성을 선보이며 전통 서정시의 틀을 과감히 깼다.
'녹스' (봄날의책 제공)
1990년대 이후 카슨은 장르의 경계를 지워버리는 걸작들을 잇달아 쏟아냈다. 에밀리 브론테를 읽는 행위와 버림받은 여인의 슬픔을 한데 엮은 장시 '유리 에세이'(1995), 고대 그리스 신화 속 붉은 괴물 게리온을 다정한 소년으로 재해석해 현대적 성장 서사시로 탈바꿈시킨 '빨강의 자서전'(1998)은 고전문학 전통을 현대의 감각으로 되살려낸 대표작이다.
그의 파격과 실험은 형식의 한계를 두지 않았다. 키츠의 시구와 기만적인 부부 갈등을 대비시킨 '남편의 아름다움'(2001)에 이어, 세상을 떠난 오빠를 기리기 위해 아코디언식 병풍 형태로 사진과 편지, 로마 시인 카툴루스의 비가를 상자에 담아낸 '녹스'(2010)는 문학을 조각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어떤 순서로든 읽을 수 있는 22권의 소책자 묶음 '플로트'(2016)와 다양한 예술 장르를 넘나든 '롱 노마'(2024)에 이르기까지, 카슨은 문학의 관습적 규칙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무대 연출가, 안무가, 시각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망설이지 않았던 카슨의 여정은 '지루함'이라는 적에 맞서 언어의 가능성을 끝없이 밀어붙인 과정이었다. 박제된 고전에 피를 돌게 하고 활자에 조형적 생명력을 불어넣은 카슨의 문학은 과거와 대화하며 부단히 새로워지는 예술의 영원성을 증명한다.
acenes@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