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페 베르디 (출처: unk, pre-1855,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813년 10월 10일, 이탈리아 북부 파르마 공국 레론콜레에서 오페라 역사를 새로 쓴 주세페 베르디가 태어났다. 그는 가난과 싸우며 음악적 재능을 키웠다. 밀라노 음악원 입학시험에서 나이가 많고 주법의 정통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낙방했으나, 개인 교습과 독학으로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개척했다.
밀라노 스칼라 극장에서 데뷔한 베르디는 두 번째 작품의 실패와 아내 및 두 아이의 연이은 사망으로 절망해 음악을 포기하려 했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1842년 초연한 오페라 '나부코'였다. 유대인의 고난을 다룬 이 작품은 오스트리아 지배 아래 있던 이탈리아인들의 민족적 울분을 자극해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나부코'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무대 음악을 넘어 통일 운동(리소르지멘토)의 상징이자 비공식 국가처럼 불렸다. 군중은 저항 구호로 '비바 베르디'(VIVA VERDI)를 외치며 독립 열망을 불태웠다. 그는 억압받던 민족의 가슴에 불을 지핀 예술가였다.
중기에 접어든 베르디는 인간 내면과 비극적 운명을 다룬 걸작 3부작을 쏟아냈다. '리골레토'(1851년), '일 트로바토레'(1853년), '라 트라비아타'(1853년)를 통해 극적 긴장감과 유려한 선율의 결합을 보여줬다. 특히 인물의 심리와 극적 맥락에 충실한 현실주의적 오페라 문법을 정립하며 명성을 굳혔다.
후기에도 그의 창작열은 식지 않았다. 수에즈 운하 개통을 기념한 대서사극 '아이다'(1871년)는 오페라 예술의 정점으로 꼽힌다. 70세를 넘겨 발표한 셰익스피어 원작의 '오텔로'(1887년)와 최후의 희극 '팔스타프'(1893년)로는 형식적 완숙미를 과시했다. 통일 운동 지사 만초니를 기린 종교음악 '레퀴엠'(1874년) 역시 불멸의 명작이다.
베르디는 1901년 1월 27일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에 모인 30만 인파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부르며 눈물로 그를 배웅했다. 그는 예술적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음악으로 민족의 고통을 위로하며 시대정신을 담아낸 거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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