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 들판서 피어난 세계 최대 축제 '옥토버페스트' [김정한의 역사&오늘]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October 12일, AM 06:00

뮌헨의 옥토버페스트 (출처: Unknown autho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810년 10월 12일, 바이에른 왕국의 수도 뮌헨 성벽 밖 넓은 잔디밭에서 세계적인 축제 '옥토버페스트'의 첫 장이 열렸다. 바이에른 왕세자 루트비히와 작센-힐트부르크하우젠 공국의 테레제 공주가 올린 혼인을 축하하기 위해 국왕이 주최한 행사였다.

축제의 대미를 장식한 행사는 대규모 경마 대회였다. 10월 17일까지 닷새간 이어진 축제 기간 동안 왕실은 뮌헨 시민 모두에게 무료로 음식과 포도주, 맥주를 베풀었다. 닫힌 궁정 안에서 귀족들끼리만 누리던 왕실 혼례의 기쁨을 평민과 함께 나누는 전례 없는 파격이었고, 축제의 열기는 도시 전체를 뒤흔들었다.

첫 축제의 폭발적인 호응에 고무된 바이에른 왕실은 이듬해에도 축제를 다시 열기로 결정했다. 농업 진흥 전시회를 결합하며 정례화의 기틀을 다졌고, 점차 민간 주도 행사로 전환됐다. 초기의 핵심 종목이었던 경마는 점차 사라졌으나, 19세기 후반 대형 맥주 양조장들의 맥주 천막과 회전목마 등 놀이시설이 들어서며 오늘날 친숙한 카니발의 풍경을 완성했다.

옥토버페스트의 태동에는 복잡한 시대적 배경이 얽혀 있었다. 당시 바이에른은 나폴레옹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프랑스와 손을 잡고 영토를 확장해 왕국으로 승격한 신흥 국가였다. 급격한 영토 팽창 탓에 프랑켄, 슈바벤 등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를 지닌 이질적인 주민들을 하나로 묶어낼 국가적 통합의 계기와 공동체적 구심점이 절실했다.

바이에른 왕실은 백성들에게 축제의 즐거움을 안겨주는 동시에 왕실을 향한 충성심과 바이에른이라는 단일 국가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심어줬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유대감을 다지고 영토 분열의 위기를 잠재우는 강력한 정치적 통합 수단으로 활용한 셈이다.

오늘날 옥토버페스트는 매년 600만 명 이상이 찾는 인류 최대의 민속 맥주 축제로 자리 잡았다. 왕실의 정치적 결속책으로 첫발을 뗐던 들판의 환호는 독일을 넘어 국경과 인종을 허무는 거대한 세계인의 문화유산으로 그 역사적 생명력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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