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열정 사이, 붉은 춤…윤별발레컴퍼니 '카르멘'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October 12일, PM 05:45

[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붉은 장미로 시작된 사랑은 끝내 비극으로 닫힌다. 결말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 윤별발레컴퍼니의 ‘카르멘’은 객석에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과연 카르멘은 죽었어야 했을까.’

윤별발레컴퍼니 '카르멘' (사진=고양문화재단)
윤별발레컴퍼니 '카르멘' (사진=고양문화재단)
윤별발레컴퍼니가 창작발레 ‘갓’에 이은 두 번째 전막 신작 ‘카르멘’을 10~11일 경기 고양시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 선보였다. 흑립·삿갓·족두리 등 한국 전통 모자를 소재로 한 ‘갓’이 스토리 없는 옴니버스 작품이었다면, 이번엔 서사가 뚜렷한 고전에 도전했다. 전작의 흥행으로 쏠린 기대 속에 오른 무대였다.

박소연 상임안무가는 카르멘을 팜므파탈이 아닌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는 자유로운 사랑을 한 인물’로 다시 읽었다. 제3자의 눈에는 이 남자, 저 남자를 옮겨 다니는 여인이지만, 카르멘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방식대로 사랑하는 일이었다는 해석이다. 그 반대편에 자신의 사랑 방식을 강요하다 끝내 카르멘을 죽이는 돈 호세가 있다. 서로 다른 두 사랑의 충돌이 작품을 이끄는 축이다. 익숙한 비극을 가해자의 시선이 아닌 카르멘의 시선에서 다시 보게 한다는 점에서 신선한 해석이다.

그렇다고 원작의 뼈대를 흔들지는 않는다. 작품은 1막 ‘붉은 장미, 어긋난 운명의 시작’과 2막 ‘선술집과 투우장, 축제 뒤의 비극’으로 나뉘어 카르멘의 서사를 충실히 따라간다. 대신 무대는 과감하게 덜어냈다. 시대와 장소를 설명하는 화려한 세트를 비운 자리를 무용수의 몸과 감정선이 채운다. 음악 역시 익숙하다. 조르주 비제의 ‘카르멘’을 박 안무가가 인터뷰에서 “장소를 미니멀하게 덜어내니 오히려 인물이 부각됐다”고 말했던 의도가 무대 위에서 그대로 읽힌다.

안무는 클래식 발레를 바탕으로 현대적 움직임과 스페인풍 동작을 녹였다. 플라멩코를 연상시키는 손짓과 박수, 호응이 발레의 선과 어우러지며 작품의 색을 진하게 만든다.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는 안무와 이를 정확히 소화하는 무용수들의 수행 능력이 맞물려, 대사 없이도 이야기가 또렷하게 전달된다.

백미는 카르멘이 두 남자와 각각 추는 2인무다. 돈 호세와의 춤에서는 상대를 붙잡고 가지려는 욕망이, 에스카미요와는 서로를 향해 타오르는 열정이 두드러진다. 같은 2인무지만 결이 전혀 다른 두 장면은 카르멘이 왜 돈 호세를 떠나 에스카미요에게 향하는지를 말보다 몸으로 설득한다.

극의 마지막, 카르멘을 죽인 돈 호세에게 길게 할애된 솔로도 이 작품의 해석을 분명히 보여준다. 슬퍼하고 후회하는 돈 호세의 몸짓은 ‘그렇게 해서 그는 과연 편했을까’라는 안무가의 질문을 객석에 되돌려준다. 비극의 원인을 카르멘의 자유분방함이 아닌 소유하려는 사랑에서 찾는 시선이 결말에서 완성되는 셈이다.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투우다. 황소 역을 맡은 남자 무용수와 에스카미요가 주고받는 호흡은 투우장의 긴장과 역동성을 고스란히 무대 위로 옮겨 놓는다. 무용수들이 직접 캐릭터 해석에 아이디어를 보탠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에스카미요 역의 강경호는 머리를 쓸어 넘기거나 거만한 손짓으로 카르멘을 부르는 등 사소한 몸짓으로 자아도취적인 스타 투우사를 그려낸다. 사랑받는 것을 즐기면서도 카르멘에게 끌려다니지 않으려는 인물의 태도가 하나하나에 묻어난다.

윤별발레컴퍼니는 발레단으로서는 드물게 ‘퇴근길’ 현상이 생길 만큼 두터운 팬덤을 확보한 민간 발레단이다. 무용수들이 직접 안무에 나서도록 독려하며 무용수 개개인의 색을 강조해왔다. ‘카르멘’은 이들이 고전 서사를 자기만의 색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한 무대였다. 개성 강한 무용수들이 저마다의 캐릭터를 입고 무대를 채우면서, 컴퍼니가 지향해온 방향성도 한층 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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