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읽히는 글에는 이유가 있다…'뉴요커의 문장들' 출간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October 13일, AM 12:05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수백 개의 문장을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시대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은 글을 쓰고, 고치고, 요약하는 일까지 척척 해낸다. 그런데 이상하다. 읽을거리는 넘쳐나는데 끝까지 읽고 싶은 글은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어떤 글은 첫 문장부터 눈길을 붙잡고, 어떤 글은 몇 줄도 읽기 전에 흥미를 잃게 한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될까.

끝까지 읽히는 글에는 이유가 있다…'뉴요커의 문장들' 출간
‘뉴요커의 문장들’은 AI 시대에도 대체할 수 없는 글쓰기의 핵심으로 ‘서술의 구조와 논리’를 제시하는 책이다. 세계 3대 뉴스통신사 중 하나인 AFP의 서울 특파원으로 활동하는 저자 강진규는 15년간 기자로 일하며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시사·문화잡지 ‘뉴요커(The New Yorker)’의 글을 분석했다. 저자는 좋은 글을 쓰려면 화려한 문장이나 표현보다 소재를 선택하고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책은 글쓰기의 과정을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도입부 △인물과 배경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방법 △개인의 경험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하는 기술 △여운을 남기는 결말 등 네 부분으로 나눠 설명한다. 첫 문장부터 독자의 기대를 뒤집는 전략과 불필요한 설명을 덜어내는 ‘뺄셈의 법칙’ 등 실제 글쓰기에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좋은 도입부의 핵심은 독자의 머릿속에 강력한 질문을 남기는 데 있다.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때 독자는 그다음 문장을 궁금해하며 글을 계속 읽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주목하는 것은 추상적인 설명보다 구체적인 장면이 지닌 힘이다. 누군가를 성실한 사람이라고 설명하는 것보다 새벽 2시 불 꺼진 사무실에서 홀로 일하는 뒷모습을 보여주는 편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거대한 사회적 문제를 다룰 때도 마찬가지다. 방대한 통계나 숫자를 나열하기보다 그 안에 놓인 한 사람의 삶을 보여줄 때 독자는 비로소 문제를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저자는 “우리는 사람을 형용사로 기억하지 않고, 장면으로 기억한다”고 강조한다.

인터뷰에서 상대방의 속마음을 끌어내는 데는 질문 못지않게 침묵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진솔한 이야기를 들으려면 질문의 내용뿐 아니라 대화의 흐름과 분위기까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특히 인터뷰이가 슬픔이나 고통을 이야기할 때 성급하게 위로하거나 감정을 드러내면 오히려 답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때로는 말을 아끼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이 더 깊은 속마음을 끌어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개인의 경험을 글로 풀어내는 데는 솔직함과 절제가 필요하다. 자신의 상처나 고통을 지나치게 설명하기보다 독자가 느껴야 할 본질적인 이야기만 남기는 것이 효과적이다. 자신의 약점과 실수를 감추지 않는 태도 역시 독자의 신뢰를 얻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사람들은 포장된 교훈보다 불편한 진실을 더 오래 기억한다”고 말한다.

좋은 글이 반드시 명확한 결론이나 정답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논쟁적인 주제를 다룰 때도 강한 주장으로 독자를 설득하기보다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편이 더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 AI가 수많은 문장을 만들어내는 시대에도 글의 가치는 얼마나 매끄럽게 쓰였느냐보다 독자에게 어떤 생각과 질문을 남기느냐에 달려 있다. 글을 다 읽은 뒤에도 오래도록 생각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좋은 글의 힘이라는 게 책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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