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 가을 기획전 ‘상서, 컬렉션을 읽다’ 전경. 60대의 추사 김정희가 쓴 ‘차호호공’(且呼好共, 다시 불러 더불어 즐기다)과 오세창이 오동나무 상자 안팎에 이 작품에 대해 쓴 상서(1939)가 나란히 걸렸다. 바깥(뚜껑·아래)에는 ‘완당선생작촉예대련신품’이란 타이틀과 함께 ‘호방하고 뛰어난 기상으로 단연 첫째 손가락에 꼽을 작품’이라고, 안쪽(위)에는 ‘이 글씨에 대한 나의 논평이 용렬하고 평범하더라도 보화각 주인께서 웃어넘겨 주시길 바란다’고 썼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 글은 위창 오세창(1864∼1953)이 쓴 ‘완당선생작촉예대련신품’(脘堂先生蜀作隷對聯神品·1939)의 일부다. 좀 쉽게 풀자면 ‘완당 선생이 쓴 촉예 서체 대련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이란 뜻이고.
자, 일단 여기까지 정리가 됐다면 이제부터는 이 글을 둘러싼 엄청난 ‘정보’를 캐낼 차례다. 슬쩍 봐도 비평인 이 글이 대상으로 삼은 작품은 완당이 쓴 ‘차호호공’(且呼好共, 다시 불러 더불어 즐기다. 2018년 보물 지정). 완당은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또 다른 호다. ‘추사체’ 등으로 더 많이 알려진 추사보다 김정희가 더 자주 사용하고 아꼈다는 호. 그러니까 60대 후반의 김정희가 ‘중국 촉도의 암벽에 새겨진 한나라대의 예서’(촉예)로 쓴 대련 ‘차호호공’에 대한 오세창의 평인 셈이다.
간송미술관 ‘상서, 컬렉션을 읽다’ 전경. 보화각 2층에 꾸린 ‘조선서화’ 방이다. 안쪽으로 이징(1581∼1653 이후)이 검은 비단에 금니로 그린 ‘고사한거’(고사의 한가로운 삶, 오른쩍)와 김시(1524∼1593)의 ‘선록완월’(신선과 사슴이 달을 구경하다)이 걸렸다. 상서는 둘 다 오세창이 썼다. ‘고사한거’에는 ‘이 허주의 니금산수도. 위창이 제하다’라고, ‘선록완월’에는 ‘김 양송당의 고사완월도. 위창이 상자에 서명하다’라고 썼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이 글이 어디에 적혀 있었느냐는 건데. ‘오동나무 상자’다. ‘차호호공’이 돌돌 말린 채 들어 있던 그 오동나무 상자의 바깥(뚜껑 위)과 안쪽에 적힌 ‘상서’(箱書)다.
오원 장승업의 ‘신선도’ 두 폭 중 ‘추정귀선’(가을 뜨락의 거북과 신선). 다른 한 폭인 ‘송하녹선’(소나무 아래 사슴과 신선)을 함께 보관한 오동나무 상자가 옆에 놓였다. 상서는 오세창이 ‘장 오원의 신선도 쌍폭. 위창이 제하다’라고 썼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오동나무 상자 하나, 쌀 한 가마니∼열 가마니 값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이 올가을 기획전으로 ‘상서, 컬렉션을 읽다’를 열었다. 전시는 간송미술문화재단의 소장품인 유물·미술품을 내보이던 그간의 ‘작품 전시’에서 더 나아간다. 유물과 오동나무 상자, 그 위에 적힌 상서까지 패키지로 꺼내놔서다. 유물 21건 45점(조선서화 12건, 근대서화 9건)과 상서 30건 61점 등 모두 51건 106점이 나섰는데, 간송컬렉션의 ‘수장체계’까지 대규모로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간송미술관 ‘상서, 컬렉션을 읽다’ 전경. 보화각 2층에 꾸린 ‘조선서화’ 방이다. 왼편으로 단원 김홍도의 ‘낭원투도’(낭원에서 복숭아를 훔치다)와 이 작품을 담은 오동나무 상자가, 그 옆으로는 수월당 임희지(1765∼?)의 ‘풍죽’과 이 작품을 담은 오동나무 상자가 걸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오원 장승업의 ‘풍진삼협’(어지러운 세상의 세 협객)과 오동나무 상자. 상자 바깥의 상서는 오세창이 썼다. ‘오원의 삼협도. 심전의 옛 발문이 있다. 위창’. 흥미로운 건 상자 안쪽에 있을 심전 안중식의 ‘발문’이다. 내용을 추리면, 심전이 신묘년(1891) 봄 마침 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오원 선생을 찾아뵈었는데 ‘풍진삼협도’라 하더란 거다. 그림에는 둘뿐인지라 ‘한 명은 어디에 있느냐’ 물었더니 ‘뒤에 있어 아직 오지 않았다’고 대답했단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단원 김홍도가 그린 ‘낭원투도’(낭원에서 복숭아를 훔치다) 곁에 오세창이 상서(1934)를 쓴 오동나무 상자가 걸렸다. 바깥에는 ‘김 단원의 동방만천투도도’라고, 안쪽에는 ‘단원 인물의 걸작으로 근래 보기 드문 가품’이라고 평가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추사 김정희가 30대에 쓴 ‘직성수구’(곧은 소리와 빼어난 구절)와 오세창이 오동나무 상자 안팎에 이 작품에 대해 쓴 상서(1939)가 나란히 걸렸다. 바깥(뚜껑·아래)에는 ‘완당 선생이 행서로 쓴 오언 대련’이란 타이틀과 함께 ‘고순에게 증정한 이 행서 오언 대련은 어떤 이가 연경 시장에서 구득했는데 전씨의 보화각 소장품이 됐으니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라고 썼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소림 조석진(1853∼1920)의 ‘인물고실지도’(옛 인물들의 고사를 담은 그림)와 12폭 족자를 담은 오동나무 상자. 상서는 오세창이 썼다. 상자 바깥(뚜껑·아래)에는 ‘조 소림 선생의 인물고실지도 열두 족자’라고, 안쪽(위)에는 그 열두 폭의 화제와 왕조·인물의 정보를 두 단으로 나눠 적었다. 전시에는 그중 8폭만 골라 내놨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간송 전형필의 첫돌 사진(1907). 12폭 족자로 전해지는 ‘인물고실지도’가 본래 병풍이었다는 것을 확인한 결정적인 증거다. 사진의 뒷배경에 놓인 병풍 속 그림이 ‘인물고실지도’의 일부다(사진=간송미술문화재단).
결국 이번 기획전의 핵심은 이거다. 수집한 유물의 엄정한 감식부터 수장의 최종 단계라 할 ‘공인’까지 기어이 얹어 간송컬렉션을 완성했다는 것. 비싸게 샀으니 얌전히 모셔두는 게 컬렉션의 전부가 아님을 내비친 거다. 간송의 차남인 전영우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은 이번 전시에 이런 글을 남겼다. “젊은 날의 나는 상자 속 유물의 온기를 더듬었다면 이제의 나는 상자 뚜껑 위에 남은 글씨를 천천히 읽는다. (…) 상서는 단지 상자에 적힌 글이 아니라 아버님이 먼 훗날의 우리에게 남긴 조용한 편지이자 문화에 대한 믿음의 증언이다.”
심전 안중식의 ‘한산충무’(한산도의 충무공, 1918)와 이한복이 상서를 쓴 오동나무 상자. ‘심전 선생의 충무공상. 무호 이한복이 삼가 제하다’라고 써 있다. 1915년 잡지 ‘청춘’(4회)에 유사한 무인의 도상을 삽화로 선보인 적이 있는 안중식이 그 모습에 화려한 채색을 더해 충무공 초상으로 재탄생시킨 것으로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간송미술관 ‘상서, 컬렉션을 읽다’ 전경. 보화각 1층에 꾸린 ‘근대서화’ 방이다. 한 관람객이 안쪽에 전시한 소림 조석진의 ‘인물고실지도’(옛 인물들의 고사를 담은 그림)를 둘러보고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