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중가수 겸 배우 빙 크로스비 타계 [김정한의 역사&오늘]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October 14일, AM 06:00

빙 크로스비 (출처: Trailer screenshot,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77년 10월 14일, 전 세계인의 겨울을 따뜻한 목소리로 감싸 안았던 미국 가수 겸 배우 빙 크로스비가 스페인 마드리드 인근 골프장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향년 74세였다.

1903년 미국 워싱턴주에서 태어난 그는 1930~40년대 대중문화를 뒤흔든 최초의 멀티 엔터테이너였다. 감미롭고 부드러운 중저음으로 속삭이듯 노래하는 '크루닝'(Crooning) 창법을 선보이며 당대 대중음악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마이크 기술의 발전을 가장 영리하게 활용한 그는 거대한 성량 대신 귓가에 맴도는 친근한 음색으로 대중의 고단한 마음을 어루만졌다.

그가 남긴 불멸의 명곡은 어빙 벌린이 작곡한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1942년 발표된 이 곡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고향을 그리워하던 군인들의 심금을 울리며 단숨에 미국의 국민가요로 떠올랐다. 음반은 전 세계에서 5000만 장 이상 팔려나가며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싱글 음반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는 대기록을 썼다. 매년 연말이면 거리마다 울려 퍼지는 겨울의 상징이 됐다.

스크린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밥 호프와 콤비를 이뤄 대히트를 친 코미디 '로드'(Road) 시리즈로 유쾌한 매력을 뽐내는가 하면, 1944년 영화 '나의 길을 가련다'에서는 따스한 품성을 지닌 오말리 신부 역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까지 품에 안았다. 노래와 연기 양쪽 모두에서 정상의 자리에 오른 역사상 보기 드문 전천후 스타였다.

그는 기술 혁신의 숨은 선구자이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쓰던 테이프 녹음 기술의 가치를 꿰뚫어 보고, 자신의 라디오 방송에 녹음 방식을 도입해 생방송 위주의 방송 생태계를 송두리째 바꿨다. 훗날 카세트테이프와 비디오테이프로 이어지는 미디어 산업의 물줄기를 튼 혁신가였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대중과 함께 호흡했던 그는 20세기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문을 활짝 연 거인이었다. 거창한 수사 대신 소박한 온기로 다가왔던 그의 목소리는 시대를 건너 오늘도 여전히 하얀 눈처럼 내린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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