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고르바초프 (출처: White House Photo Office,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90년 10월 15일,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소련의 마지막 최고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그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반세기 가까이 지구촌을 짓누르던 냉전의 빙벽을 깨뜨리고 동서 진영 간 화해의 전기를 마련한 공로였다.
1985년 집권한 고르바초프는 파탄 직전의 소련 경제와 경직된 사회 체제를 바꾸기 위해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의 깃발을 올렸다. 대외적으로는 서방과의 소모적인 군비 경쟁을 중단하는 이른바 '신사고 외교'를 선언했다. 미국과의 중거리 핵전력 조약 체결과 아프가니스탄 침공 소련군의 철수는 그가 내놓은 비핵 평화의 실천적 증거였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계기는 동유럽 위성국가들에 대한 무력 불개입 선언이었다. 과거 '브레즈네프 독트린'으로 상징되던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강제 개입 정책을 포기하고 각국의 자율적 진로를 인정했다. 그 결과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폴란드와 헝가리 등지에서 자유민주주의 혁명이 무혈로 완결됐다.
국제사회의 열광적인 찬사와 달리 모스크바 내부의 시선은 싸늘했다. 과감한 개혁 조치는 심각한 생필품 부족과 물가 폭등을 불렀고, 각 연방 공화국의 민족주의 분리독립 요구는 연방의 결속을 뒤흔들었다. 보수파는 그를 '사회주의 조국을 헐값에 팔아넘긴 배신자'로 낙인찍었고, 급진 개혁파는 미온적인 경제 조치를 비판하며 등을 돌렸다.
노벨 평화상 수상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입지는 급속히 좁아졌다. 이듬해 8월 군부와 보수 강경파의 쿠데타 시도를 겪으며 실권을 잃었고, 결국 1991년 12월 소련의 공식 해체와 함께 쓸쓸히 권좌에서 물러났다. 냉전을 종식한 세계적 거인의 퇴장이자 한 제국의 붕괴였다.
1990년 가을에 전해진 노벨 평화상 소식은 인류에게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거대한 희망을 안겨주었다. 적대와 반목의 시대를 끝내고 대화의 시대를 연 고르바초프의 평화 유산은 체제 해체라는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고, 20세기 현대사의 가장 극적인 전환점으로 깊이 각인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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