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 임직순 30주기 추모전 ‘내면의 세계를 그리고 싶다’ 전경. ‘화실’(1982, 128×161㎝)이 걸렸다. 강렬한 색채에 묵직한 서정까지 심어내며 절정의 예술세계를 향해 나아가던 1980년대 초반의 대표작이다. 무수한 색이 들어찼지만 어지럽거나 현란하지 않은 화면은 임직순의 탁월한 장기이자 무기다. 멀리 뒤쪽으로 ‘소녀’(1986, 71×95㎝)가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과연 그런가. 만약 내가 화가고 누군가 내 뒤통수에서 이런 말을 해댄다면 귓등으로라도 들으려 했을까. 그런데 잠시 생각을 해본다면 말이다. 게다가 30년이 훌쩍 지나 뒤돌아보니 말이다. 이 말은 화가가 다른 화가에게 하는 잔소리가 아니었던 거다. 바로 자신을 다그친 회초리였던 거다. 기본기라 믿었고 덕목이라 여겼던 거다. ‘100장’이 중요한 게 아니란 소리다.
그러곤 결국 그 화가는 이런 속내를 드러내고 만다. “나는 그림으로써 세계를 제패하고 싶다. 자신을 갖자! 그리고 그리고 그리자! 세계로 통용되는 나의 그림을 말이다.”
서울미술관 임직순 30주기 추모전 ‘내면의 세계를 그리고 싶다’ 전경. ‘가을과 여인’(1974, 116.8×80.3㎝)이 걸렸다. 1970년대 대표작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오래 잊고 있었다. 간혹 작품 한두 점, 어쩌다 작가 이름 한두 번씩 입술 끝에 닿을까 말까 했던 게 전부였으니. 세월이 묻어버린 작가가 어디 한둘이냐고 하면 더더욱 아쉬운 노릇이고. 세월도 작가도 지키지 못한 게 우리의 변명거리나 될 수 있으려나.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이 화백의 30주기를 기리며 마련한 추모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타이틀은 ‘내면의 세계를 그리고 싶다’.
서울미술관 임직순 30주기 추모전 ‘내면의 세계를 그리고 싶다’ 전경. ‘실내의 여인’(1977, 162.2×97㎝)이 걸렸다. 1970년대 대표작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평면성을 넘어선 입체성도 이전 전시와는 다른 특징이다. 무엇보다 손닿는 곳에서 작가의 화업을 들여다보게 했다. 붓과 물감, 이젤과 팔레트 등의 화구는 물론 작품에 들인 도자기 소품도 여럿. 모델들을 즐겨 앉혔다는 의자까지 옮겨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스케치’가 있다. 전시를 위해 모은 것만 1000여 점이더라고 미술관은 귀띔한다. 그중 최종 완성작인 유화로 연결된 스토리나 시기별 작업을 보여주는 작품 위주로 수십 점만 골라냈다고.
임직순의 스케치 전시작 중 부분. 30주기 추모전 ‘내면의 세계를 그리고 싶다’를 위해 모았다는 1000여 점 중 수십 점만 선별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눈먼 자의 최초 개안. 나도 그 빛과 색채의 만남으로 건강한 생과 자연에 대한 헌사를 그림으로 그리고 싶다.”
일찌감치 ‘색채의 화가’로, ‘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렸다. 그 별칭답게 더할 나위 없이 강렬한 색으로, 그 색을 가장 잘 살려낼 꽃과 여인을 무수히 그렸다고 본다면 틀린 해석은 아니다. 특히 만개한 꽃을 곁에 두고 의자에 앉은 여인을 그린 ‘여인좌상’은 1980∼1990년대를 관통하며 큰 인기를 끌었으니까. 적잖은 ‘화실’(1982·1986 등)이 그랬고, 숱한 ‘꽃과 여인’(1980·1981·1984 등)이 그랬다. 오죽하면 “오전에는 모델을 앉혀 여인을 그리고, 오후에는 꽃을 꽂아 정물을 그렸다”고 했을까.
임직순의 ‘여인’(1985, 53×65㎝) 옆으로 모델을 앉혀두고 작업하는 화백을 포착한 사진이 붙었다. 그림은 사진 속 화백의 위치에서 바라보이는 모델의 모습과 일치한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서울미술관 임직순 30주기 추모전 ‘내면의 세계를 그리고 싶다’ 전경. ‘정물’(1989, 45.7×53㎝·왼쪽)과 ‘장미’(1981, 45.5×53㎝) 사이에 이 시기(1980년대) 정물화에 들인 도자기 소품을 함께 전시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서울미술관 임직순 30주기 추모전 ‘내면의 세계를 그리고 싶다’ 전경. 화백과 작업실 풍경을 찍은 사진 앞으로 붓과 물감, 이젤과 팔레트 등 생전에 화백이 사용한 화구와 생활용품을 모았다. 모델들을 즐겨 앉혔다는 의자(왼쪽)은 실제로 작품에서 왕왕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임직순의 ‘사념’(1973, 90.9×65.1㎝·왼쪽). 1973년 프랑스 파리에 체류하며 연 개인전에 걸었던 작품이다. 옆으로 실제 모델과 전시 전경을 촬영한 사진이 붙어 있다. 오른쪽은 그즈음에 그린 ‘자화상’(1974, 45.5×38㎝)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임직순의 ‘소나무가 있는 풍경’(1989, 130.3×162.2㎝·왼쪽)과 ‘풍경’(1990, 45.5×53㎝). 만년에 접어들면서 대상의 형체는 덜어내고 색에 더 집중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임직순의 스케치 전시작 중 부분. 1980년대 후반부터 1996년 작고할 때까지 화백은 맞닿아 서 있는 나무 두 그루의 도상을 꾸준히 연구하고 스케치로 남겼다. 이 스케치들에서 1980년대 후반에 작업한 ‘소나무’ 도상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서울미술관 임직순 30주기 추모전 ‘내면의 세계를 그리고 싶다’ 전경. 미완성 유작 ‘팜트리’(가제·1996, 72.5×90.5㎝)가 화백이 생전에 사용했다는 이젤 위에 올라 있다. 그 옆으로 화백의 스케치 중 어느 한 장의 뒷면에서 찾아냈다는 문구를 화백의 필체 그대로 옮겨놨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처음부터 ‘30주기 추모전’으로 준비한 건 아니란다. 미술관이 ‘사생하는 작가들’을 한데 꾸리는 기획을 하던 중 ‘임직순’이 도드라졌다는 거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이는 평생 현장 사생을 고집했던 화가였다. 여행만이 유일한 취미였다는데 사실 그조차 사생을 위한 장치였을 터. 이제는 더더욱 귀한 장면이라 할, 수채물감이나 연필과 펜 등을 들고 풍경과 인상을 그려내는 화가들의 그 ‘사생’을 강조하고 실천했던 거다. “자고로 화가라면” 말이다.
서울미술관 임직순 30주기 추모전 ‘내면의 세계를 그리고 싶다’ 전경.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에 제작한 풍경화가 나란히 걸렸다. 왼쪽부터 ‘황혼정경’(1990, 40.9×53㎝), ‘바다와 배’(1989, 61×91㎝), ‘어느 어촌’(1989, 55×74㎝)(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하지만 끝내 직접 물을 수 없는 질문 한 가지. 사생을 고집한 작가가 왜 굳이 ‘내면의 세계를 그리고 싶다’고 했을까. 사생은 절대 닿을 수 없는 곳을 찾았던 건가, 사생이 마침내 다다른 곳을 찾았던 건가. 전시는 내년 2월 14일까지.
서울미술관 임직순 30주기 추모전 ‘내면의 세계를 그리고 싶다’ 전경. 1980년대 작품들이다. 왼쪽부터 ‘꽃과 여인’(1984, 81.5×69.5㎝), ‘소녀’(1986, 71×59㎝), ‘화실’(1982, 128×161㎝). 모두 서울미술관 소장품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서울미술관 임직순 30주기 추모전 ‘내면의 세계를 그리고 싶다’ 전경. 서울미술관 소장품 중 하나인 ‘소녀’(1980, 44×37㎝)가 걸렸다. “화가란 겉모양만을 그리는 것은 아니다”라는 작가의 생각과 눈높이를 맞췄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