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준(왼쪽) 영화감독과 김태훈 팝 칼럼니스트가 2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콘래드 서울에서 열린 '제15회 이데일리 W페스타'에서 '어쩌다보니 여기까지'란 주제로 대담을 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장 감독의 작품에는 전형적인 영웅과 거리가 먼 인물들이 등장한다. 데뷔작 ‘라이터를 켜라’는 고작 일회용 라이터를 잃어버린 뒤 이를 되찾으려 분투하는 평범한 남자를 그렸고, ‘리바운드’는 주목받지 못했던 고교 농구팀의 도전을 다뤘다. 올초 개봉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는 폐위된 왕 단종과 그를 지키려 했던 시골 촌장의 관계를 전면에 내세웠다.
장 감독은 ‘왕사남’을 언급하면서 “사극은 제작비가 많이 드는데 영웅이나 전쟁 서사, 왕족 간 권력 암투가 아닌 이야기가 과연 투자를 받을 수 있을까 싶었다”면서도 “제작을 밀어붙인 건 옳다고 믿는 일을 실천하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고 언급했다. 그는 또 “‘왕사남’은 의(義)에 대한 영화이자, 옳은 일에 대한 영화”라며 “옮음을 실천하려는 사람들, 계산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장 감독은 오늘날 사회를 ‘금(金)의 시대’에 빗대며 물질적 성취를 기준으로 인간관계를 평가하는 세태를 짚었다. 그는 “요즘은 집이 몇 평인지, 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연봉이 얼마인지 따진다”며 “친구 사이에도 돈을 따지고 계산이 앞서곤 하는데, 친구란 돈으로 계산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이어 “사람들이 ‘의’의 시대를 그리워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 ‘왕사남’ 제작을 결심했다”고 전했다.
‘금의 시대’를 만든 기성세대를 향한 일침도 날렸다. 장 감독은 “최근 딸과 산책하면서 스무 살 무렵부터 번아웃을 겪는 청년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요즘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무언가에 쫓기고 계산하다가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어 “우리 어린 시절에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공포에 잠식되지 않고 자유롭게 놀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면서 “우리는 자유롭게 살았으면서 아이들에게 ‘놀 수 있는 특권’을 빼앗아버린 기성세대가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칼럼니스트는 “젊은 세대는 세상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결국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질서 속에서 살아간다”며 “이유 없이 희생당하는 단종의 비극에 젊은 관객들이 자신을 투영한 것이 흥행 요인”이라고 해석했다. 아울러 “관객들이 ‘장항준의 영화’를 사랑하는 건 패배를 가장한 무언의 위안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인생의 성공은 커다란 성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자존심을 지키는 것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다”고 부연했다.
장 감독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주목하는 태도는 인생관과도 맞닿아 있다. 그 역시 오랜 시간 흥행과 거리가 먼 감독으로 지냈고 수 년간 준비한 작품이 무산되는 좌절을 경험했다. 하지만 성공을 향해 조급해 하기보다는,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았다. 그는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채플린의 말을 인용해 “가까이서 보면 고민 없는 사람, 갈등 없는 관계는 없다”며 “희극과 비극, 성공과 실패를 구분 짓기보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 감독은 ‘왕사남’으로 1000만 영화 감독이 된 후에도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보다는 즐거움을 우선시한다. 그는 “어쩌다 얻어걸린 거라 전혀 부담이 없다”면서 “항상 그랬듯 앞으로도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인생을 즐길 수 있을지 고민할 것”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