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의 조각' 표지/뉴스1
'숨의 조각'은 1741년 발견된 지 27년 만에 멸종한 스텔러바다소의 흔적을 약 300년에 걸쳐 추적한다. 이다 투르페이넨은 베링 탐사대의 항해에서 박물관의 골격 복원에 이르는 이야기를 통해 자연을 탐구하고 이용한 인간의 역사를 살핀다.
이 거대한 해양 포유동물은 베링 탐사대가 고립된 바다에서 생존할 식량이 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취를 감췄다. 뒤늦게 동물을 연구하려던 사람들에게는 살아 있는 개체 대신 흩어진 뼈와 기록만 남았다. 소설은 그 조각들을 찾고 연결하는 긴 여정을 따라간다.
핀란드 작가는 2016년 헬싱키 자연사 박물관에서 스텔러바다소의 골격을 본 뒤 이야기를 구상했다. 완전한 골격이 극소수만 남은 동물이 어떻게 이곳에 이르렀는지 탐색했고, 여러 시대에 걸쳐 그 몸을 다룬 사람들의 삶을 서사로 재구성했다.
첫 장편소설인 이 작품은 헬싱긴 사노맛 문학상을 받았고 핀란디아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29개국에 판권이 계약됐으며 자연사와 예술, 과학의 역사를 결합했다. 사라진 생물을 눈앞에 다시 세우는 작업이 인간의 책임을 대신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 1741년 베링 탐사대…9m 바다소와의 첫 만남
1741년 신항로를 찾으러 떠난 베링 탐사대는 러시아 캄차카반도에서 북태평양으로 향한다. 박물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스텔러도 배에 올랐다. 그는 낯선 지역의 동식물을 관찰하며 이전에 접하지 못한 자연을 기록한다.
그러나 악천후와 험한 바다 때문에 탐사대는 외딴 섬에 정박한다. 선원들은 질병과 굶주림에 시달리며 목숨을 잃는다. 새로운 생물을 발견할 가능성에 들떠 있던 항해는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시간으로 바뀐다.
이때 탐사대 앞에 몸길이 9m에 이르는 해양 포유동물이 나타난다. 온순하고 사냥하기 쉬웠던 이 동물의 고기는 지친 선원들에게 식량이 된다. 훗날 스텔러의 이름을 따 스텔러바다소라 불린 동물이다.
탐사대에는 생존의 기회였지만 동물에게는 인간과의 위험한 접촉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스텔러는 새로운 종을 발견한 연구자의 기쁨을 느끼면서도 동물이 인간의 필요에 따라 소비되는 장면을 마주한다. 소설은 탐구와 이용이 같은 항해 안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숨의 조각' 표지/뉴스1
◇ 1859년 알래스카…흩어진 뼈를 좇는 사람들
이야기는 1859년 러시아령 알래스카로 옮겨간다. 새로 부임한 총독 푸루옐름은 동물학자 노르드만 교수에게서 스텔러바다소의 흔적을 찾아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마지막 목격 기록 이후 오랜 시간이 흘러 존재 자체가 희미해진 상태다.
총독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일은 식민지의 모피 공급이다. 해달과 물개, 여우, 비버, 바다코끼리의 가죽을 더 확보해야 하지만 동물의 개체 수는 감소한다. 자연의 이용 가치에 초점을 맞추는 식민지 운영과 사라진 종을 찾으려는 학문의 관심이 교차한다.
스텔러바다소의 뼈가 발견됐다는 소식은 탐구의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 살아 있는 동물을 볼 수 없는 과학자들은 묻혀 있거나 흩어진 뼛조각에서 생김새와 몸의 구조를 알아내려 한다. 조각 하나하나를 모아 원래의 몸을 상상하는 작업이 이어진다.
노르드만 교수와 그의 조수 올손이 참여한 복원 과정에는 자료를 비교하고 부족한 부분을 추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소설은 표본을 수집하고 분류하는 작업에 투입된 시간과 인물들을 따라간다. 완성된 골격 뒤에 가려진 노동과 선택도 함께 드러난다.
◇ 헬싱키 박물관의 골격…되돌릴 수 없는 멸종
흩어졌던 골격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해체와 복원을 반복했다. 핀란드 여성 과학 일러스트레이터 힐다 올손과 새알 복원 전문가 존 그뢴발 등도 그 역사에 등장한다. 저자는 박물관에 전시된 표본을 만든 작업이 한 과학자의 성과만은 아니었다는 점을 드러낸다.
다시 세운 뼈대는 관람객이 멸종 동물의 크기와 형태를 살펴보게 한다. 그러나 골격을 온전히 조립해도 생명은 돌아오지 않는다. 인간이 잃어버린 종의 모습을 기억하고자 하는 노력과 실제 멸종을 되돌릴 수 없는 현실 사이에는 간격이 남는다.
과학적 호기심은 자연의 이해를 넓혔지만 수집과 사냥은 다른 생명을 위협하기도 했다. 동물을 소유하거나 전시하려는 욕망은 새와 포유류의 표본을 수집하는 장면에서도 이어진다. 작품은 과학의 발전만이 아니라 자연을 정복할 대상으로 삼은 태도까지 돌아본다.
핀란드어 원제 '엘롤리세트'(Elolliset)는 바위나 바다 같은 무생물과 구별되는 살아 있는 자연을 가리킨다. 인간 역시 그 자연에 속한 종 가운데 하나라는 의미를 담는다. 스텔러바다소의 골격이 오늘날 박물관에 남은 까닭을 묻는 일은 인간이 다른 생명과 맺어야 할 관계를 묻는 일로 이어진다.
△ 숨의 조각/ 이다 투르페이넨 지음/ 정보람 옮김/ 360쪽
'숨의 조각' 표지/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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