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해군의 몰락 앞당긴 레이테만 해전 발발 [김정한의 역사&오늘]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October 23일, AM 06:00

레이테만 해전에서 격침된 일본 전함 무사시. (출처: Naval History & Heritage Command,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44년 10월 23일, 필리핀 레이테만 인근 해역에서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전이 막을 올렸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는 미 연합군의 필리핀 탈환 작전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 제국 해군이 사활을 걸고 출격했다. 양측에서 집결한 전함과 항공모함 등 함정만 300여 척에 달했고, 투입 병력은 20만 명을 웃돌았다.

전황이 급박해진 일본 군부는 '쇼1호 작전'을 발동해 연합함대의 마지막 전력을 그러모았다. 오자와 지사부로 중장의 항공모함 전단이 미군 주력 함대를 북쪽으로 유인하는 미끼가 되고, 구리타 다케오 중장의 주력 함대가 레이테만으로 돌입해 상륙 부대를 궤멸한다는 구상이었다.

나흘간 이어진 격전은 바다와 하늘을 동시에 집어삼켰다. 24일 시부얀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의 상징이었던 6만 4000톤급 무사시가 미 해군 항공대의 집중 폭격을 맞고 격침됐다. 수리가오 해협에서는 전함 간의 치열한 야간 포격전이 벌어졌고, 사마르섬 앞바다에서는 목숨을 건 구축함들의 육탄전이 펼쳐졌다.

이 전투는 광기 어린 자살 공격인 카미카제 특공대가 조직적으로 처음 투입된 현장이기도 했다. 절망적인 전세 속에서 비행기에 폭탄을 싣고 미 항공모함으로 돌진하는 자살 전술은 연합군에 큰 충격을 안겼다. 그러나 조종사들의 목숨을 소모품처럼 내던진 잔혹한 전술도 미국의 압도적인 산업 생산력과 화력 우위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과는 일본 제국 해군의 완전한 궤멸이었다. 정규 항공모함 4척을 비롯해 전함 3척, 중순양함 10척 등 주력함들이 줄줄이 수장됐다. 잔존 함정들은 본토와 남방 자원 지대로 뿔뿔이 흩어졌고, 다시는 조직적인 함대 기동 작전을 펼치지 못했다. 사실상 일본 해상 전력의 종말을 고한 순간이었으며, 연합군은 필리핀 탈환의 결정적 교두보를 확보했다.

레이테만 해전은 일본 군국주의의 헛된 팽창욕이 빚어낸 거대한 파멸의 정점이었다. 과학적인 전략과 압도적인 역량을 도외시한 채 맹목적인 희생만을 강요하던 군국주의 체제의 필연적 결말을 바다 위에 적나라하게 새겨 넣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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