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벽 앞 멈춘 피아노·쓰러진 여자…이정주의 시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October 24일, AM 06:21

'피아노와 빙벽' 표지/뉴스1

시집 '피아노와 빙벽'은 빙판 위를 스스로 움직이는 피아노와 현실의 경계를 넘어서는 인물들을 통해 존재의 낯선 변모를 그린다. 이정주는 2014년 '아무래도 나는 육식성이다' 이후 12년 만에 펴낸 이번 시집에서 결핍과 초월의 이미지를 펼친다.

시집은 4부로 나눠 '꽃', '피아노', '약속', '류머티즘', '테이프' 등의 작품을 실었다. 일상에서 익숙하게 보던 사물과 사람은 뜻밖의 공간으로 옮겨 가며 기존의 의미에서 벗어난다.

시 '피아노'에서 악기는 얼어붙은 땅 위를 혼자 미끄러지다가 높은 빙벽 앞에 멈춘다. 피아노 교본을 든 여자가 그곳에 이르고, 쓰러지는 몸이 악기에 부딪히자 큰 소리와 함께 빙벽이 갈라진다.

여자는 시집 곳곳에서 현실과 비현실 사이를 오간다. 귀가 사라지거나 인어로 변하고 산처럼 거대해지는 모습은 익숙한 인물의 모습을 흔든다.

시 '약속'에서는 날개 달린 돌들이 하늘을 날다가 땅으로 내려온다. '류머티즘'에서는 텅 빈 피아노가 트럭에 실려 떠나며 사물에 부여한 통상적인 역할을 뒤집는다.

사물을 본래의 자리에서 떼어 다른 공간에 놓는 전치와 치환은 주요한 표현 방식이다. 하늘의 얼음덩어리 속에 피어난 꽃과 공중에 떠 있는 테이프도 이런 낯선 결합에 속한다.

이정주는 1982년 '현대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앞서 '행복한 그림자', '문밖에 계시는 아버지', '홍등' 등을 펴냈으며 이번 시집에서도 현실을 낯설게 바꾸는 언어 실험을 이어간다.

△ '피아노와 빙벽'/ 이정주 지음/ 116쪽

ar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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