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 아빠’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7억원의 기적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October 27일, PM 01:01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이제는 좀 쉬고 싶다”고 했던 아버지는 끝내 눈을 감을 수 없었다. 27년간 홀로 키워온 중증 자폐 아들이 마음에 걸렸다. 간암 말기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아들이 살아갈 곳을 찾아 전국의 보호시설에 문을 두드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거절뿐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정리하는 대신 의사에게 조금만 더 살려달라고 부탁해야 했던 아버지. ‘피터팬 아빠’로 알려진 고(故) 전경철 작가의 이야기다. 그는 지난달 세상을 떠났지만, 아들을 위해 품었던 마지막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피터팬 아빠’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7억원의 기적
전 작가의 유고집 ‘안녕, 엄니’가 지난 26일 출간됐다. 지난 6월 펴낸 에세이 ‘안녕, 피터팬’에 이은 마지막 기록이다. 전작이 중증 자폐 아들과 함께한 세월을 담았다면, 이번 책에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며 겪었던 일들과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들을 걱정했던 아버지의 마음이 담겼다. 한 남자가 아버지이자 아들로 살아온 고단한 세월이자, 끝까지 가족의 손을 놓지 않았던 사랑의 기록이다.

전 작가의 삶은 평범한 가장의 일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보기술(IT) 업체 대표였던 그는 사회생활을 사실상 중단하고 25년 넘게 가족을 돌봤다. 중증 자폐를 가진 아들은 성인이 돼서도 어린아이처럼 아버지의 보살핌이 필요했다. 여기에 치매와 뇌경색을 앓는 어머니까지 돌봐야 했다. 아들은 자라면서도 여전히 아버지를 필요로 했고, 어머니는 나이가 들수록 기억을 잃어갔다. 한 사람은 세상을 배워가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다른 한 사람은 평생 살아온 세상을 조금씩 잊어갔다. 그 두 사람의 곁을 지킨 이가 전 작가였다.

이번 유고집에는 지난해 1월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삶이 40개 에피소드로 담겼다. 어머니가 들려준 지난날의 이야기를 아들이 대신 받아 적는 형식이다. 전 작가는 “오래전 몰두했던 ‘자폐’ 공부에 이어, 이번엔 ‘치매’ 공부를 해야 했죠. 이제부터가 제대로 된 시작이었고 갈 길은 멀어 보였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어머니의 회고록을 마친 그는 곧바로 자신과 아들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간암 말기 시한부 판정을 받으면서 그에게 남은 시간은 길지 않았다.

유고집에는 아들을 홀로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아버지의 절박한 심정도 고스란히 담겼다. 전 작가는 “그저 지내게만 해달라는, 살게만 해달라는, 사람으로서 가장 낮은 수준의 부탁이라 생각했지만, 세상은 이를 거절했습니다”라고 털어놨다. 아들에게 특별한 대우를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없어도 아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곳 하나만 있으면 됐다. 그러나 그 작은 소망조차 이루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전 작가의 사연은 방송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통해 소개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홀로 남겨질 아들을 위해 보금자리를 찾아 헤맨 아버지의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방송 이후 그의 사연에 공감하는 시민들의 관심과 응원이 이어졌다.

그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아들이 살아갈 공동체를 찾게 된 전 작가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부모와 자녀들을 위한 더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성인 중증 자폐인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마을 ‘네버랜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피터팬 재단’ 설립을 추진했지만, 꿈이 완성되는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지난달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 이후에도 시민들의 응원은 계속됐다. 방송과 책을 통해 사연을 접한 이들이 힘을 보태면서 피터팬 재단 창립지원금 7억원이 모였다. 이번에 출간된 ‘안녕, 엄니’의 저자 인세 수익금 전액도 재단 설립에 사용될 예정이다. 전 작가는 생전 마지막 기록에 “제 생 마지막 소명이 우리의 소망이 되고, 세상이 변하고 모두가 따뜻해지는 21세기 우리나라의 현실동화로 완성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라는 소망을 남겼다. 아버지는 떠났지만, 그가 꿈꿨던 ‘네버랜드’의 이야기는 시민들의 따뜻한 연대 속에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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