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토 무솔리니의 검은 셔츠단 (출처: Unknown autho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22년 10월 28일, 이탈리아 전역에서 검은 셔츠를 맞춰 입은 수만 명의 파시스트 무장 대원들이 수도 로마를 향해 일제히 행진을 시작했다. 파시즘의 우두머리 베니토 무솔리니가 폭력과 겁박으로 정권을 강탈한 '로마 진군의 날'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었음에도 이탈리아의 현실은 비참했다. 경제는 파탄 났고,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실업난 속에 노동자들의 총파업과 사회주의 혁명의 기운이 나라를 뒤흔들었다. 국민의 박탈감과 사회적 혼란을 틈타 무솔리니가 이끈 국가파시스트당은 빠르게 세력을 키웠다.
전쟁 참전용사와 불만을 품은 청년들을 끌어모아 조직한 준군사조직 '검은 셔츠단'은 무솔리니의 강력한 사병 집단이었다. 이들은 노동조합 사무실을 불태우고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폭행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강력한 지도자를 갈망하던 기득권층과 중산층은 이들의 잔혹한 백색 테러를 묵인하거나 오히려 열렬히 지지했다.
수도로 진격해 온 무장 세력 앞에서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굴복했다. 유혈 사태를 두려워한 군부와 왕실은 계엄령 선포를 거부하고 정권을 무솔리니의 손에 헌납했다. 안전한 밀라노에 머물며 상황을 지켜보던 무솔리니는 국왕의 내각 구성 요청 전보를 받은 뒤에야 열차를 타고 로마에 입성해 39세의 나이로 총리에 올랐다.
합법의 가면을 쓰고 권좌에 앉은 무솔리니는 야당을 해산하고 언론을 검열하며 일당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국가를 위한 모든 것, 국가 외 아무것도 없다'는 구호 아래 개인의 자유와 존엄은 철저히 짓밟혔다. 이탈리아에서 자행된 이 잔혹한 전체주의 실험은 10여 년 뒤 독일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며 인류를 제2차 세계대전의 거대한 비극으로 몰아넣었다.
거리의 폭력 집단이 선동과 위협으로 민주주의의 숨통을 끊어놓는 데는 단 하루의 결단과 지배층의 비겁한 방조로 충분했다. 국가의 위기와 혼란을 틈타 대중의 불안을 먹고 자란 무솔리니의 독재는 깨어 있는 시민의 감시와 연대가 사라진 사회가 얼마나 손쉽게 파멸하는지 잘 보여준다.
acenes@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