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영웅 존 글렌, 다시 우주 궤도에 오르다 [김정한의 역사&오늘]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October 29일, AM 06:06

존 글렌 (출처: Unknown autho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98년 10월 29일 오후,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가 창공을 갈랐다. 이 우주왕복선 안에는 당시 만 77세였던 존 글렌 상원의원이 탑승하고 있었다. 1962년 머큐리 계획을 통해 미국인 최초로 지구 궤도를 돌며 국가적 영웅으로 떠올랐던 그가 36년 만에 다시 우주복을 입고 최고령 우주 비행 기록을 세우는 순간이었다.

냉전기 소련과의 우주 경쟁 한복판에서 조국의 자존심을 세웠던 젊은 비행사는 어느덧 황혼의 정치인이 돼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30여 년 전과 다름없이 빛났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고령화 사회를 앞두고 노화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한다는 명분으로 그의 탑승을 승인했다.

글렌은 단순한 명예 승무원에 머무르지 않고 비행 내내 까다로운 생체 실험 대상자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다. 매일 혈액과 소변을 채취당하고 수면 패턴을 측정당하면서 83차례에 걸친 과학 실험에 온몸을 던졌다. 77세 노구에 가해지는 중력가속도와 우주 멀미의 고통 속에서도 그는 단 한 번의 불평 없이 모든 일정을 완벽히 소화했다.

디스커버리호는 8일 21시간 44분 동안 지구 궤도를 134차례 돌며 580만 킬로미터를 비행했다. 11월 7일 케네디 우주센터 활주로에 무사히 착륙한 글렌은 부축조차 마다하고 성큼성큼 걸어 나와 주먹을 쥐어 보였다. 전 세계는 노익장의 위대한 도전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인간의 가능성은 물리적 나이의 한계에 갇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온몸으로 증명했다. 편안한 은퇴 생활 대신 칠흑 같은 암흑과 고립의 우주를 다시 택했던 77세 비행사의 결단은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준다. 꿈을 좇는 자에게 늦은 시간이란 없다는 진리를 지구 궤도에 굵직하게 새긴 여정이었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오늘날, 민간 우주여행 시대가 열리며 더 많은 이가 우주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미지의 공간에 도전하며 인간의 한계를 넓히려 했던 존 글렌의 담대한 발자취는 우주 개척사에 가장 빛나는 훈장으로 남아 숨 쉰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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