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영웅으로 美 제2대 대통령 지낸 존 애덤스 출생 [김정한의 역사&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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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2026년 October 30일, AM 06:00

존 애덤스 초상 (출처: Biographical Dictionary of America, vol. 1 / Rossiter Johnson,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735년 10월 30일 매사추세츠주 브레인트리(현 퀸시)의 평범한 농가에서 미국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가 태어났다.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던 그는 영국의 식민 지배에 맞선 인지세법 반대 투쟁에 앞장서며 정계에 발을 들였다.

대륙회의 대표로 선출된 애덤스는 영국의 지배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이끌어낸 핵심 동력이었다. 토머스 제퍼슨에게 독립선언서 초안 작성을 강력히 권유해 기틀을 잡았다. 독립전쟁 중에는 외교관으로 프랑스와 네덜란드로 건너가 막대한 군자금과 국가 승인을 얻어냈으며, 파리 조약 체결을 주도해 신생 미국의 독립을 국제사회에 각인시켰다.

독립 후 초대 부통령을 거쳐 1796년 대선에서 승리해 제2대 대통령에 올랐다. 재임 중 프랑스와의 준전쟁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 협상을 성사시켰다. 또한 근대 해군의 기반을 구축해 훗날 미국이 해양력을 확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연방주의자로서 법치와 강력한 행정부를 중시했던 그의 정책은 미국 헌정 체제의 초기 안정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정치적 반대파 탄압이라는 오명을 남긴 외국인·선동금지법 서명은 뼈아픈 실책이었고, 그는 이로 인해 재선에서 패배하는 쓴잔을 마셨다. 하지만 권력에 집착하지 않고 평화로운 정권 교체를 받아들임으로써 미국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선례를 남겼다. 퇴임 전 존 마셜을 연방대법원장에 임명한 결정은 사법부 독립과 사법심사권을 정립하는 결정적 한 수가 되었다.

말년에는 정치적 숙적이던 토머스 제퍼슨과 수백 통의 서한을 주고받으며 지적 화해를 이루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독립선언 50주년이 되던 1826년 7월 4일, 제퍼슨이 숨을 거둔 지 몇 시간 뒤 9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애덤스는 타협을 모르는 원칙주의자였기에 대중적 인기는 낮았다. 그러나 당리당략 대신 헌법적 원칙과 국가의 안정을 최우선에 두었던 그의 실천은 신생 공화국의 뼈대를 굳건히 세웠다. 법의 지배를 국가의 최우선 가치로 확립한 그의 족적은 오늘날 미국 민주주의의 골격을 구성하고 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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