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틈 노려 저작권료 챙기는 '딸깍음원' 급증… AI음악 등록 기준 시급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October 30일, AM 06:04

[이데일리 김현식 기자]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만들어진 머무르의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는 ‘멜론 톱100’ 차트 2위까지 올랐지만, 저작권료를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저작권료 지급의 근거인 ‘AI 활용 음악신탁 등록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KOMCA, 음저협)는 ‘AI 활용 음악신탁 등록 기준’을 “공론화가 부족하다”는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권고에 따라 폐지했다. AI를 활용한 음악은 급증하고 있는데, 인간의 창작 기여를 가려내고 권리를 인정할 ‘신탁등록 기준’의 공백이 길어져 업계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상 아티스트 '머무르'로 활동 중인 작곡팀 글로리웨이브(사진=글로리웨이브 사운드)
가상 아티스트 '머무르'로 활동 중인 작곡팀 글로리웨이브(사진=글로리웨이브 사운드)


◇AI 활용 창작물 권리 인정 기준 다시 공백


29일 ‘멜론 톱100’ 차트에 따르면 수노(Suno) AI 앱으로 만든 머무르의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가 그룹 A2O LITE(에이투오 라이트)의 ‘네온’(NEON)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이 곡은 선풍적 인기를 끈 리센느의 ‘러브 어택’(LOVE ATTACK), 소연의 ‘퇴사할게여’도 제쳤다.

AI를 활용한 음원이 음원 차트 최상위권인 ‘톱5’에 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5월 ‘조선힙합’의 ‘마음의 숲’이 멜론 톱 100에 진입해 주목받은 데 이어, AI 음원이 주요 플랫폼의 최상위권까지 영역을 넓혔다.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는 글로리웨이브(이용석, 최성혁)가 가상의 아티스트 ‘머무르’를 내세워 발표한 곡이다. 황치열의 ‘왜 이제와서야’, 길구봉구의 ‘내일 이별’ 등을 썼던 실력파 뮤지션 글로리웨이브는 ‘수노’ 앱을 활용해 만든 음원들을 모아 ‘머무르’라는 이름을 내걸어 별도로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머무르’로 발표한 곡들에 대한 저작권료 수입은 0원이다. AI로 만들었다는 이유로 음저협에 음원을 등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픽=김정훈 기자)
(그래픽=김정훈 기자)
앞서 음저협은 지난 8월 AI 활용 음악에 관한 ‘음악저작물 신고·등록에 관한 규정’과 ‘음악저작권 신탁계약 약관’의 개정 내용을 발표했다. 명령어(프롬프트)만 입력해 AI가 전적으로 생성한 이른바 ‘딸깍 음원’은 제외하되, 인간이 작사·작곡·편곡 등에 실질적이고 주도적으로 참여한 음악은 저작물로 등록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하지만 ‘AI 활용 음악의 저작물성과 권리 인정 범위에 대해 범문화계 차원의 폭넓은 사회적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국회 의견, ‘문화예술계 전반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문체부의 권고에 따라 발표 22일 만에 개정안을 철회했다. 이에 AI를 활용해 만든 음악의 신탁 등록 길은 완전히 막힌 상태다. 업계에 따르면 통상 멜론 1위곡에 대한 작사, 작곡 저작권료는 월 2000만~3000만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글로리웨이브는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인간이 창작한 부분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준이 생겨 기대가 컸는데, 등록 기준이 철회돼 아쉽다”며 “AI를 활용했더라도 사람이 직접 만든 부분은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머무르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 커버(사진=글로리웨이브 사운드)
머무르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 커버(사진=글로리웨이브 사운드)


◇등록 기준 공백 속 부작용 현실화…재정비 시점 불투명


AI 음원의 저작권 기준에 대한 제도적 공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100% AI 생성물을 인간 창작물인 것처럼 속여 음원 등록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것. 음저협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등록된 음원 중 ‘딸깍 음원’으로 의심돼 신고된 사례는 802건에 달한다. 이들 저작물에 지급된 저작권료는 205억 원이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AI 활용 사실을 투명하게 밝힌 창작자는 저작물을 등록하지 못하는데, 이를 숨긴 채 인간 창작물로 등록한 것으로 의심되는 음원에 저작권료가 지급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현장의 혼선과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김재원 조국혁신당 의원 주최로 국회에서 두 차례 열린 ‘AI 활용 음악 신탁 기준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100% AI 생성물을 신탁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큰 틀에는 공감대를 형성대를 형성했다. 다만 △인간의 창작 기여를 인정할 구체적인 판단 요소와 증빙 방식 △AI 탐지 기술을 어디까지 활용할지 등 세부 사항에 대한 추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사옥 전경(사진=음저협)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사옥 전경(사진=음저협)
SG워너비의 ‘죄와 벌’ 등의 가사를 쓴 남민설 작사가는 “이제는 AI를 인간을 위협하는 경쟁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창작 도구로 받아들여야 할 때”라며 “창작자가 불필요한 죄책감 없이 AI 도구를 자유롭게 활용하고, 본인이 직접 기여한 창작의 몫을 투명하게 밝힐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체부는 문화예술계 전반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공론의 장을 계속 이어간다는 입장이지만, 의견 수렴기간 등에 대한 구체적인 일정은 제시하지 않은 상태다. ‘AI 활용 음악신탁 등록 기준 공백’이 길어지는데 대한 업계의 우려는 깊어지고 있다.

작곡가 정진환 씨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상황에서 탁상공론이 길어지면 국내 창작자들이 시대에 뒤처지게 된다”며 “작곡가들이 AI를 활용하면서 적법하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시장을 서둘러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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