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프로세르피나’(1882). 1871년부터 11년 동안 연달아 8점을 제작한 그림의 8번째이자 로세티 생애 마지막 작품이다. 그림 속 인물은 로마신화 속에 등장하는 프로세르피나(그리스신화에서는 페르세포네)로 지하세계의 왕 플루토(하데스)에게 납치돼 저승의 왕비가 된 여신이다. 동료 화가 윌리엄 모리스의 아내이자 로세티의 오랜 연인이던 제인 모리스를 모델로 삼았다. 1∼7번째 판본이 검은 머리의 모리스였던 데 비해 8번째인 마지막 판본에선 죽은 아내 엘리자베스 시달의 붉은 머리, 도톰한 입술을 덧입혔다. 캔버스에 유채, 77.5×37.5㎝. 버밍엄미술관(영국 버밍엄) 소장.
[이윤희 미술평론가] 1869년 10월 5일 밤, 영국 런던 북쪽 묘지의 한 무덤 곁에 모닥불이 지펴졌다. 그것을 신호 삼아 몇몇 인부들이 흙을 걷어 내고 관 뚜껑을 열었다. 영국 내무부의 허가를 받은 일이었고 내무부 소속 의사가 그 자리에 입회했다. 무덤 안에는 화가이자 시인인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1828∼1882)의 아내 엘리자베스 시달(1829∼1862)이 누워 있었다. 이 작업을 지휘한 사람은 로세티의 대리인이었다.
관뚜껑을 연 순간 7년 전 세상을 떠난 시달의 시신이 보였다. 백골이 된 시신의 머리카락 곁에는 원고 묶음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그것은 남편 로세티가 관 속에 넣어둔 자작시 뭉치였다. 시가 적힌 종이에선 냄새가 지독하게 났고, 여러 편의 시를 관통하는 커다란 벌레 구멍이 나 있었다.
그밤 정작 로세티는 묘지에 오지 않았다. 열흘 뒤 로세티는 동생에게 편지로 ‘소독을 마친 원고를 보고 왔다’고 적었다. ‘실망스럽지만 원고의 상태가 가망이 없지는 않다’고도 썼다. 하지만 편지 어디에도 아내의 무덤을 파헤친 마음에 대한 토로는 없다. 자신의 자작시 상태만을 걱정하는 무심한 문장들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사랑에 관한 오래된 질문과 마주한다. 로세티는 정말 아내를 사랑했을까. 아니면 아내를 사랑하는 자신, 지극한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사랑했을까.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가.
◇그림 그리면서도 문학 놓지 않아…단테 ‘새로운 삶’ 번역하기도
1828년 런던에서 태어난 로세티의 세례명은 가브리엘 찰스 단테 로세티였다. 아버지 가브리엘레 로세티는 나폴리왕국에서 혁명에 가담했다가 쫓겨난 망명객으로, 런던에 정착해 킹스칼리지에서 이탈리아어를 가르쳤다. 아버지는 중세 이탈리아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 연구자였다. 그 집안에서 단테의 이야기는 일상의 공기와 다름없었다. 그 아들이 자신의 이름을 ‘가브리엘 찰스 단테 로세티’에서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로 바꿀 정도였다. 이 선택은 젊은 날의 치기였을지 모르지만 돌이켜 보면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을 결정짓는 것 같은 행위였다. 로세티는 스스로 단테가 되고자 했다. 그리고 단테가 된다는 것은 언젠가 자신의 지극한 사랑 베아트리체를 찾아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로세티는 글과 문학에 재능이 있었고 그림을 그리면서도 끝내 문학을 놓지 않았다. 스무 살 무렵부터 단테의 저서 ‘새로운 삶’을 영어로 옮겼다. 아홉 살에 처음 본 소녀 베아트리체를 향한 사랑, 그의 이른 죽음, 그 죽음을 통해 사랑이 지상의 것에서 천상의 것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시와 산문으로 엮은 책으로 이야기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하는 시인 자신이다. 젊은 번역자는 아직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옮기고 있는 이 구조가 장차 자신의 사랑이 그대로 따라갈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훗날 로세티의 아내가 될 시달을 처음 알아본 사람은 동료 화가 월터 데버렐이었다. 1849년 무렵 레스터 스퀘어 근처 모자가게에서 일하던 스무 살의 여점원인 시달은 키가 크고 창백했으며 구릿빛에 가까운 붉은 머리를 지니고 있었다. 눈에 띄는 그 외모 덕에 이내 라파엘전파 화가들의 모델이 됐다.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1851∼1852)에서 꽃을 쥔 채 물 위에 떠 있던 여인이 바로 시달이다.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1851∼1852).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 속 오필리아를 그렸다. 연인 햄릿에게 버림받고 아버지를 잃은 충격으로 실성한 채 들판을 헤매던 오필리아가 물에 빠져 숨을 거두는 장면을 바탕으로 했다. 섬세한 주변 환경의 묘사, 화면에 흐르는 비감까지 미술사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죽음의 순간을 포착한 이 작품의 모델이 훗날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아내가 될 엘리자베스 시달이다. 캔버스에 유채, 76.2×111.8㎝. 테이트 브리튼(영국 런던) 소장.
결국 2년 뒤 시달은 진통제를 과다 복용한 채 의식을 잃고 쓰러진 상태로 발견됐다. 그날 부부는 다른 이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고 아내를 집에 데려다 놓은 로세티가 다시 밤 외출을 했을 때였다. 이튿날 아침 시달은 끝내 서른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친구들 사이에는 시달이 유서를 남겼고 누군가 그것을 태웠다는 이야기가 오래 떠돌았다.
장례식에서 로세티는 자작시를 옮겨 적은 원고 묶음을 아내의 관 속에 넣었다. 사본은 남기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내의 머리 옆에 로세티가 자신의 시 묶음을 넣어주는 장면을 예술가의 슬픔이 극에 달한 장면으로 기억했다. 대단히 연극적인 모습이었지만 사본도 없이 자신의 원고를 관 속에 넣었던 것은 진실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30대 중반의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아내 엘리자베스 시달이 사망한 이듬해인 1863년 런던 첼시 집 정원을 배경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가로 잘 알려진 루이스 캐럴(1832∼1898)이 촬영했다. 로세티 사후에 이 사진은 친동생인 비평가 윌리엄 마이클 로세티의 저서 ‘디자이너이자 작가로서의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1898)의 권두 삽화로 실리기도 했다.
◇죽은 아내 시달, 베아트리체로 만든 그림 ‘베이타 베아트릭스’
아내가 죽은 뒤 로세티는 런던 템스강변 첼시로 이사했다. 넓은 정원에 웜뱃, 너구리, 아르마딜로 같은 이국의 동물을 길렀고, 집 안은 골동품과 청화백자로 가득했다. 그림값도 올랐고 그에 부응하는 듯 화면은 관능과 장식에 대한 욕망이 극을 향해 달렸다. 그러나 이 무렵 로세티도 편치만은 않았다. 극도의 불면에 시달렸던 그는 수면제를 위스키와 함께 삼키기 시작했고 그 양은 갈수록 늘어났다. 당시 시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그를 괴롭혔는데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면 남는 것은 시인으로서의 자신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던 듯하다. 그때 문득 자신의 가장 좋은 시들이 시달의 무덤 속에 잠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베아타 베아트릭스’(1864∼1870). ‘축복받은 베아트리체’라는 뜻이다. 1862년 세상을 떠난 아내 엘리자베스 시달을 추모한 그림으로 중세 이탈리아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의 저서 ‘새로운 삶’에 나오는 베아트리체의 이른 죽음을 융합했다. 로세티가 평생 꿈꿔온 ‘단테가 돼 나만의 베아트리체를 완성하겠다’는 환상을 끝내 완성한 작품이다. 캔버스에 유채, 86.4×66㎝. 테이트브리튼(영국 런던) 소장.
그 붕괴의 한복판에서 로세티는 ‘프로세르피나’(1871∼1882)를 그렸다. 로마신화 속 프로세르피나는 저승의 왕 플루토에게 납치돼 지하세계의 왕비가 된 여신이다. 하지만 이 여신의 모델은 시달이 아니라 동료 화가 윌리엄 모리스의 부인 제인 모리스라는 여인이었다. 한 점도 아니고 그리고 또 그려, 1871년부터 10년 넘게 8점의 유화가 이어졌다. 이상했던 점은 이 그림에 계속 불운이 따랐던 일이다. 하나는 캔버스를 보강하다 얼굴이 구겨진 데다 운송 중에 행방을 잃었고, 또 하나는 철도로 옮기던 중 파손사고를 겪었다. 로세티조차 “저주받은 그림”이라고 불렀을 정도다. 마지막 8번째 판본을 마친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해인 1882년이었다.
이 마지막 ‘프로세르피나’ 앞에 서면 묘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제인 모리스는 검은 머리의 여인이었고, 일곱 번째 판본까지는 검은 머리의 여인으로 그려졌다. 그런데 마지막 판본에서 여신의 머리는 붉은 구릿빛으로 타오른다. 모자가게의 여점원 시절부터 눈을 붙들었던 시달의 머리 색이다. ‘베아타 베아트릭스’와 나란히 보면 그 유사성은 더욱 또렷하다. 붉게 물결치는 머릿결, 길고 굵은 목, 도톰하게 솟은 윗입술, 단단한 턱. 두 여인은 거의 같은 사람처럼 보인다. 떨쳐버리려 해도 계속 달라붙는 기억이란 이런 것이었을까.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백일몽’(1880). 로세티 후기 대표작으로 만년에 그린 유화 중 가장 완결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푸른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 아래 앉아 깊은 생각(백일몽)에 잠겨 있는 여인은 동료 화가 윌리엄 모리스의 아내이자 로세티의 오랜 연인이던 제인 모리스다. 로세티의 후기작 인물들이 상반신이나 얼굴에 집중됐던 것과 달리 이례적으로 전신의 모습을 화면 가득 담아냈다. 캔버스에 유채, 157.7×92.7㎝. 빅토리아앨버트뮤지엄(영국 런던) 소장.
상대를 향한 마음이라고 말하지만 결국 내심의 이익을 위해 굳이 사랑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는 이들이 있다. 어쩌면 인간의 사랑에는 대개 그런 마음이 섞여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랑의 시를 읊어댔지만 로세티는 그것이 가면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았고 무덤을 파헤침으로써 가면을 숨기지 못했다. 그것은 실패한 사랑이었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편집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