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대학원, 지방에 가면 우수 학생 유치 어렵다?…설립 연기 주장까지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October 30일, PM 08:06

왼쪽부터 은희경 소설가, 방현석 소설가, 정은귀 번역가, 곽효환 전 한국문학번역원장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10.30/뉴스1

번역계가 석·박사 학위 수여를 위해 추진했던 한국문학번역원 번역대학원 설립에 우려를 표시했다. 번역대학원을 충남대와 협력해 설립하면 우수 학생을 유치하기 어렵다는 논리였다. 아울러 내년 문학 분야 정부 예산안이 778억 원으로 늘어난 가운데 문학나눔 도서보급 사업의 예산 감소도 쟁점이 됐다.

이같은 논의는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회 문학 분과 제4차 회의에서 거론됐다. 곽효환 전 한국문학번역원장(시인)을 비롯해 정은귀 번역가, 얀 디륵스 번역아카데미 교수 등은 번역대학원을 충남대와 협력해 추진하면 우수 학생을 유치하기 어렵다는 논리를 폈다. 이들 외에도 방현석·은희경 소설가, 김현우 출판 에이전시 대표, 이낙준 웹소설 작가, 이수지 그림책 작가 등 위원 8명이 참석했다.

다만 지방 대학과 협력할 경우 우수 학생 유치가 어려워진다는 주장에는 보다 구체적인 검토가 필요했다. 특히, 석·박사 학위과정 신설을 미루더라도 기존 교육환경을 유지하자는 의견이 번역계에서 나온 만큼,논리도 빈약한 우수 학생 유치의 어려움을 주장하기보다 학생들의 학습 기회와 교육의 전문성, 교수진의 근무 여건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30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회 문학 분과 제4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10.30/뉴스1

◇ 충남대 협력 번역대학원에 우려…설립 유보 요구
한국문학번역원은 번역대학원을 내년 9월 개교할 목표로 서울에서 단독 설립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교육부가 지역 균형 발전을 이유로 수도권 단독 설립을 허용하지 않고 지방 국립대와의 협력을 요구하면서 문체부는 충남대와의 연계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지난 13일에는 윤선미 번역원 번역아카데미 교수 등 약 90여 명은 '한국문학 번역대학원, 특정 대학과의 강제 협동과정이 아닌 단독 설립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회의에서는 석사 학위를 수여하면서 기존 번역아카데미 인재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문체부는 전체 이수 학점의 70~75%를 번역아카데미 수업으로 인정받고, 나머지 가운데 약 13~15학점을 협력 대학에서 한 학기 동안 이수하는 방안을 교육부와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곽효환 전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충남대에 번역을 전문으로 하는 전임교원이 없다면서 직접 방문해 들은 대학 측 설명도 문체부가 제시한 협력 방안과 상당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장관 말씀과 충남대 분들의 말씀 사이에 상당한 거리가 있다"며 "지금 말씀하시는 게 우리의 희망 사항에 그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은귀 한국외대 영미문화학과 교수는 "지방 대학과 협력하면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렇게 된 바에야 번역원을 지방으로 이전한 뒤에 단독 설립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며 "기존에 아주 탄탄하게 운영해 오던 번역 아카데미를 그대로 끌고 나가는 게 지금은 더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용신 문체부 예술정책관은 번역원이 지방으로 이전한 뒤 단독 대학원을 설립하려면 교육시설과 입지 등에 대한 인가 심사를 다시 거쳐야 해 최소 4~5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 아카데미 교육과정을 유지하면서 석사 학위를 수여하기 위해 대학과 연구기관 간 협업과정 방식으로 협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충남대와의 양해각서 체결도 논의 중이라고 재차 설명했다.

최휘영 장관은 교육부를 계속 설득하는 한편, 충남대와 학점을 연계해 대학원을 먼저 운영할지 번역원이 수도권 밖으로 이전한 뒤 독립 대학원을 설립할지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최 장관은 교육부와 협의한 구체적인 안을 정리한 뒤 번역가 등 관계자들에게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해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얀 디륵스 번역아카데미 교수, 김현우 출판 에이전시 대표, 이낙준 웹소설 작가, 이수지 그림책 작가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10.30/뉴스1

◇ 문학나눔 도서보급 확대와 선정 방식 개선 요구
문학나눔은 국내 문학 도서를 선정·구매해 전국 도서관과 복지시설에 보급하는 사업이다. 내년 예산은 올해 54억 원보다 6억 원 줄어든 48억 원이다. 문체부는 행사 비용을 조정했을 뿐 도서 보급 사업비 자체는 감소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지만 위원들은 예산 감액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방현석 소설가는 문학나눔의 예산 증액을 요구하면서 문예창작과 학생들에게 지정된 소설을 읽고 오픈북 시험을 보겠다고 예고했던 경험을 꺼냈다. 그는 "학생들이 도서관에 책이 3권뿐이었다면서 빌릴 수 없으면 책을 사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도서관 대출 실적을 창작 지원과 연계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은희경 소설가는 도서보급 사업이 작가·출판사·독자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다. 다만 "계속해서 받는 사람만 받고 그러면 또 이게 무슨 소용이냐"며 "대상이 좀 돌아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휘영 장관은 사업 확대에 앞서 집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아무리 좋은 취지의 사업도 집행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다음에 아무리 좋은 취지를 설명해도 깎인다"며 현장에서 발견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려 달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이번 회의에서 김현우 출판 에이전시 대표는 국내외 작가와 번역가가 지속적으로 교류할 거점 공간을 제안했다. 이낙준 웹소설 작가는 예산 1억 원 미만의 공모전에도 1000여 명이 참여할 수 있다며 웹소설의 산업적 확장을 위한 공모전을 제안했다. 얀 디륵스 번역아카데미 교수는 인공지능 확산에 따른 번역과 공모전 운영 방식의 재검토를 주문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30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회 문학 분과 제4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10.30/뉴스1

◇ 내년 문학 예산 778억 원…해외 진출·문학관 지원 확대
문체부가 편성한 2027년 문학 분야 정부 예산안은 778억 원이다. 올해 466억 원보다 312억 원(67%) 늘어난 규모로, 창작 지원과 한국문학 해외 진출, 문학관 활성화에 중점 투자한다.

작가 창작지원금은 올해 6억 원에서 내년 19억 5000만 원으로 늘리고 지원 대상을 신진·유망·중견 작가로 세분화한다. 문학상주작가 사업도 32억 원에서 67억 원으로 확대한다. 지원 인원은 100명에서 175명으로, 활동기간은 7개월에서 9개월로 늘어난다.

한국문학 해외 진출 예산은 250억 원에서 344억 원으로, 번역출판 지원은 59억 원에서 122억 원으로 증액한다. 작가 등의 해외 교류 예산도 55억 원에서 84억 원으로 늘어난다. 한국 고전·근현대 걸작의 기획 번역에 20억 원을 새로 편성했다. 국립한국문학관 관련 예산은 52억 원에서 234억 원으로, 지역문학관 활성화 예산은 4억 2000만 원에서 43억 원으로 늘어난다.

art@news1.kr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