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 명이 살던 홍콩의 콘크리트 미로…구룡성채가 남긴 질서와 빈곤의 기록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October 31일, AM 06:07

'구룡성채, 검은 성의 비밀' 표지 (흐름출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10.31/뉴스1

'구룡성채, 검은 성의 비밀'은 홍콩의 거대한 무허가 건축물 집합지가 탄생하고 사라진 역사를 추적한다. 법을 연구해 온 곽한영은 약 4년에 걸친 자료 조사와 현지 답사를 바탕으로 구룡채성의 악명 뒤에 가려진 주민들의 생활을 복원한다.

1993년 철거 과정에서 땅속의 석판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 위에는 '구룡채성'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외부에는 범죄와 마약의 소굴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성채 안에는 식당과 학교, 의료시설을 비롯한 일상의 공간도 자리했다. 저자는 왜 이곳을 무법지대라고 불렀는지부터 다시 따져 묻는다.

구룡채성의 출발점은 영국과 청나라 사이에 남겨진 통치권의 공백이었다. 아편전쟁 이후 홍콩이 영국에 넘어가는 과정에서도 해안요새의 관할 문제는 복잡하게 남았다. 행정의 경계가 모호한 틈으로 중국 본토의 난민과 도시의 빈민들이 유입됐고, 좁은 땅 위로 건물이 계속 증축됐다.

야구장 정도의 면적에 주민 약 5만 명이 살던 시기에는 건물이 15층 높이까지 들어섰다. 무허가 공장과 무면허 의료시설, 삼합회의 활동이 뒤얽혔으나 이곳의 생활이 범죄만으로 구성되지는 않았다. 주거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이들에게는 도시에서 머물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기도 했다.

주민들은 공적 서비스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 환경에서 자체적인 규칙과 관계망을 만들었다. 자치 조직인 '카이퐁'은 방치된 시신 처리에서 시작해 쓰레기 수거와 이정표 설치, 부동산 거래 같은 문제에 관여했다. 곽한영은 국가의 통치가 약한 공간에서도 사람들이 함께 살기 위해 어떤 질서를 만드는지 살핀다.

1987년 홍콩 식민정부는 철거 계획을 세웠고 성채는 이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보상을 받지 못하거나 보상금만으로 다른 주거지를 구하기 어려운 주민들이 생겼다. 저자는 낡은 건축물을 없앤 일이 그 안으로 사람들을 밀어 넣은 빈곤과 주택 문제까지 해결한 것은 아니라고 짚는다.

구룡채성은 '공각기동대'를 비롯한 영화적 상상력에도 흔적을 남겼다. 저자는 영화 속 미로 같은 공간과 역사적 현장을 구분하면서 서울 구룡마을의 판자촌, 홍콩 거리의 가족사와 22년간 성채에서 일한 노인의 증언도 함께 살핀다. 도시의 독특한 풍경보다 그 공간을 만든 생활 조건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책은 구룡채성의 소멸 이후 홍콩에서 전개된 정체성 논의로 시선을 넓힌다. 반환을 앞둔 불안과 2014년 우산혁명, 2019년 시위의 맥락에서 '홍콩에 사는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꺼낸다. 개발과 정비의 이름으로 공간을 지울 수는 있어도 그곳 사람들이 겪은 불평등과 소속의 문제는 남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 구룡성채, 검은 성의 비밀/ 곽한영 지음/ 384쪽

ar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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