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밍, 학술보고 통해 페니실린을 세상에 공개 [김정한의 역사&오늘]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October 31일, AM 06:00

알렉산더 플레밍 (출처: No restrictions, via Wikimedia Commons)

1928년 10월 31일, 영국 런던 세인트메리 병원의 미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이 의학계 앞에 섰다. 그의 연구실 구석에 놓인 페트리 접시에서 피어난 푸른곰팡이가 인류 의학사를 송두리째 뒤흔든 순간을 공식 보고하는 학술 발표회 자리였다. 이날이 바로 페니실린이 세상에 처음 공개된 날이다.

그해 8월, 플레밍은 포도상구균 배양 접시를 둔 채 휴가를 떠났다. 돌아온 그가 목격한 것은 푸른곰팡이 주변의 세균이 말끔히 녹아내린 광경이었다. 그는 이 현상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세균학자로서 수많은 감염 환자를 마주하며 다진 치열한 통찰이 그 사소한 이상 현상을 과학적 탐구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그는 곰팡이 배양액을 걸러내 강력한 항균 물질을 확인한 뒤, 푸른곰팡이속 학명 '페니실리움'에서 이름을 따 이를 '페니실린'이라 명명했다. 이날 병원 의학연구회 보고는 인류가 보이지 않는 미생물과의 전쟁에서 처음으로 화학적 반격의 단초를 마련했음을 세상에 알린 학술적 이정표였다.

하지만 학계의 반응은 냉담했다. 배양액 속 물질의 불안정성과 대량 생산 기술의 한계로 인해 그의 보고는 곧바로 실용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플레밍 자신조차 인체 치료제라기보다는 실험실 내 특정 세균을 분리하는 용도로 여겼을 만큼 상용화의 길은 멀고 험난했다. 발견의 위대함에 비해 당시 의학 기술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페니실린이 진정한 기적의 명약으로 거듭난 것은 10여 년 뒤 하워드 플로리와 에른스트 체인의 끈질긴 연구 덕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대량 정제에 성공한 페니실린은 전장의 수많은 부상병을 패혈증과 폐렴의 공포에서 건져냈다. 플레밍이 남긴 최초의 관찰과 학술 보고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결실이다.

낡은 실험실의 배양 접시 하나가 열어젖힌 항생제 시대는 인류의 평균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리며 현대 문명을 떠받쳤다. 쓰레기통으로 사라질 뻔한 곰팡이를 인류의 방패로 빚어낸 것은 실패를 무심히 흘려보내지 않은 한 과학자의 집요한 눈길이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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