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 사람' 표지 (테오리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10.31/뉴스1
'글과 그 사람'은 역사 속에 남은 문장을 통해 그 글을 쓴 사람과 시대를 다시 읽는다. 역사가 김범은 사마천의 편지, 이순신의 일기, 광개토왕비 연구 등 서로 다른 기록을 모아 글이 역사적 의미를 얻는 과정을 살핀다.
기록이 남았다는 사실과 그 기록이 역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저자가 주목한 글은 고난을 견디며 쓰였거나 오래된 논쟁 속에서 새롭게 읽혀 온 문장들이다. 글의 내용뿐 아니라 집필자가 처한 상황과 뒤이어 기록을 읽은 사람들의 해석까지 함께 다룬다.
첫 번째 사례는 사마천이 임안에게 보낸 답신이다. 궁형을 당한 그는 치욕을 견디는 이유를 자신의 미완성 저작 '사기'에서 찾았다. 김범은 개인의 고통을 말한 편지를 읽으며 130편 규모의 역사서를 끝까지 쓰려 했던 집필자의 소명과 기록의 관계를 해석한다.
당나라 문인 한유의 '맹동야를 보내며'도 검토한다. 한유는 화려한 문장 형식보다 현실과 사상을 드러내는 고문을 지향한 인물이다. 책은 당대 사회와 문학의 변화, 맹교와의 교유를 연결해 한 편의 글이 문학적 표현을 넘어 시대의 실천과 맞닿는 지점을 찾는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서는 1597년 4월 1일에 시선을 모은다. 백의종군이 시작되는 시기의 기록을 둘러싼 정황과 이순신을 변호한 정탁의 상소 등을 함께 살핀다. 영웅의 일기를 이미 아는 결과에 끼워 맞추기보다 그날의 처지에서 읽는 일이 중요하다는 접근이다.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를 통해서는 고향을 떠나는 경험과 이별의 감정을 읽는다. 문장이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과 그 글을 다시 마주하는 저자의 기억을 함께 놓는다. 이렇게 책은 사료와 문학의 형식적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사람이 시대를 견디고 남긴 흔적이라는 공통점을 포착한다.
광개토왕비문을 둘러싼 연구에서는 특히 '신묘년 조'를 다룬다. 다케다 유키오의 저작을 중심으로 '왜 주도형'과 '고구려 주도형' 해석, 비문 내용의 사실성 논쟁을 검토한다. 특정 해석을 단순히 선택하기보다 자료의 구조와 주석, 논거를 어떻게 검토해 왔는지까지 짚는다.
김범은 여러 시대의 글을 읽으며 역사 연구가 사실을 확인하고 서로 다른 해석을 견주어 보는 작업임을 보여준다. 사마천이 고통 속에서 글을 완성한 사연과 광개토왕비에 평생 매달린 연구자의 태도는 서로 다른 시대에도 연결된다. 기록을 읽는 일이 곧 그 기록을 남긴 사람의 선택과 연구자의 책임을 살피는 일이라는 결론이다.
△ 글과 그 사람/ 김범 지음/ 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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