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실 압축 알고리즘' 표지 (민음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10.31/뉴스1
'손실 압축 알고리즘'은 정보를 줄이는 과정에서 일부가 사라지는 데이터 처리 방식을 기억과 사랑의 문제로 옮겨 온 시집이다. 김석영은 완전하게 보존할 수 없는 과거를 거듭 구성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네 부의 시에 담았다.
손실 압축은 저장과 전달을 쉽게 만드는 대신 원본에 변화가 생기는 방식이다. 시인은 인간의 기억 역시 어떤 장면을 되돌릴 때마다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무엇을 지우고 무엇을 남겼는지는 사랑하는 사람이 공유한다고 믿는 장면에서도 서로 다를 수 있다.
'영혼의 메타포'와 '영호와 영호의 영혼' 같은 작품에는 상대와 동일한 기억을 갖기를 바라면서도 그 차이를 받아들이는 인물이 등장한다. 시 속 관계는 한쪽이 다른 쪽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소유하는 상태로 정리되지 않는다. 다르게 남은 기억을 들여다보는 시도가 관계를 계속하게 만든다는 관점이다.
시집의 형식도 이미지와 사물 사이의 전환을 활용한다. '정물화', '움직이는 정물', '수성' 등의 제목이 보여주듯 정지한 대상과 움직이는 상태를 오가며 장면을 다시 구성한다. 익숙한 이미지는 다른 맥락에 놓이면서 이전과 동일하게 복원할 수 없는 기억의 성격을 드러낸다.
'눈과 사람'에서는 눈밭에 남는 발자국을 통해 길의 형성을 떠올린다. 한 번의 흔적보다 되풀이되는 발걸음이 낯선 공간에 길을 만들어 놓는다. 책은 반복이 곧 과거의 정확한 복제를 뜻하지 않으며 불확실한 미래로 향하는 행동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폐허는 집을 짓기 전에 일어나고'와 '질문의 크기' 등에서는 반복과 기도의 이미지가 함께 나타난다. 길이 미리 그려져 있지 않더라도 계속 움직이며 흔적을 남길 수 있다는 생각이다. 잃어버린 것을 모두 되찾는 대신 손실을 안고 다음 장면에 다가가는 태도가 작품들을 연결한다.
김석영은 2022년 시집 '돌을 쥐려는 사람에게'로 제41회 김수영문학상을 받았다. 이번 작품은 그로부터 4년 만에 나온 신작이자 '민음의 시' 342번이다. 1부부터 4부까지의 작품을 통해 영혼과 사물, 바다와 눈, 식물과 동물의 이미지를 다양하게 배치했다.
추천의 글을 쓴 문보영 시인은 기억이 온전하게 남지 않기에 삶이 계속된다는 생각을 전한다. 김석영의 시들은 지워지지 않는 하나의 정답을 찾기보다 달라지는 기억 사이에서 관계를 지속하려는 사람을 바라본다. 되살릴 수 없는 원본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새로운 언어를 만드는지 질문한다.
△ 손실 압축 알고리즘/ 김석영 지음/ 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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