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초부시집' 표지 (아카넷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10.30/뉴스1
'정초부시집'은 18세기 조선에서 나무를 하며 살았던 시인 정초부의 작품 106수를 한데 모았다. 안대희 성균관대 석좌교수는 흩어져 있던 시집과 문헌을 조사해 작품을 교감하고 시인의 생애에 관한 기록까지 정리했다.
정초부는 지금의 경기 양평과 광주 일대에서 땔나무를 마련하며 생계를 이었다. '초부'라는 이름 자체가 나무꾼을 가리킨다. 신분과 가난의 제약 속에서도 일상의 경험을 소재로 한시를 써 당대 문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안대희는 2011년 고려대 중앙도서관에서 '초부유고'를 발견한 뒤 관련 자료를 추적했다. 10여 년에 걸친 조사 끝에 시집 7종과 40여 종의 문헌에서 정초부의 시 83제 106수를 확인했다. 같은 작품의 서로 다른 전승을 비교하고 번역해 하나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수록된 작품에는 가난한 생활과 주변 풍경, 사람들과의 교유가 담겼다. '땔나무를 팔다'에는 생계의 현장이, '동호에 배를 띄우고'에는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의 정서가 나타난다. 후자의 시는 김홍도의 '도강도'를 비롯한 여러 그림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당시 한문학의 주요 주체는 오랫동안 양반 사대부였다. 17세기 이후 중인 등 여러 계층이 문예 활동에 참여했지만 정초부는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한 여항시단과도 거리가 있었다. 노비 신분에서 벗어난 뒤에도 어려운 생활을 이어 갔던 경험이 그의 작품 세계에 남았다.
그럼에도 시는 계층을 넘어 널리 알려졌다. 정약용, 박제가, 홍석주 등 문인들의 작품과 함께 수록됐고 여러 사람이 정초부의 행적을 기록했다. 완전한 시집을 스스로 남기지 못했지만 다른 이들이 시를 채록해 오늘날까지 전승될 수 있었다.
책의 1부는 정초부의 작품을 주석과 번역을 붙여 제시한다. 2부에는 그를 언급한 글과 관련 기록을 모아 후대 사람들이 시인과 작품을 어떤 방식으로 기억했는지 보여준다. 한 사람의 작품집인 동시에 문학이 전해지는 경로를 살피는 자료집이기도 하다.
정초부의 시는 화려한 고사와 수사보다 생활에서 건져 올린 짧은 표현으로 특징지어진다. 이번 집성은 조선 후기 문학을 궁중과 사대부 중심에서만 보지 않고 주변부의 생활과 재능으로 확장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신분의 제약을 넘어 전승된 문학이 어떤 기록과 사람들 덕분에 남았는지도 드러낸다.
△ 정초부시집/ 정초부 지음/ 안대희 옮김·해설/ 4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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