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자를 위한 중세 사전' 표지 (윌북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11.2/뉴스1
'시간 여행자를 위한 중세 사전'은 14세기 잉글랜드에 직접 들어간 여행자처럼 당시 사람들의 일상을 살펴보는 역사서다. 이언 모티머는 전쟁과 역병으로만 알려진 중세의 이미지를 넘어 먹고 입고 일하며 놀던 사람들의 실제 생활을 복원한다. 당시의 관습을 지금의 상식과 비교하되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 어떤 사회적 환경에서 나왔는지 설명하는 방식이 책의 서술을 이끈다.
중세의 도시는 위엄 있는 건물과 활기찬 시장이 있는 곳이면서 거리에서 악취가 나는 공간이기도 했다. 오늘날의 여행자라면 어떤 숙소에 머물고 어디서 음식을 구할 수 있을지, 사람들과 말을 섞을 때 무엇을 조심해야 할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길의 안전과 이동 수단, 숙소의 비용, 식사와 위생은 생존과 연결된다.
옷차림과 여행, 주거와 숙박, 식생활, 건강과 위생, 법, 놀이와 여가까지 열한 장에 나눠 설명한다. 옷과 음식처럼 사소해 보이는 선택에도 신분과 종교, 지역의 관습이 작용했다는 점을 살펴본다. 어떤 재료를 구할 수 있는지와 어디에 사는지, 공동체 안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가 생활을 좌우했다.
저자는 가정의 가재도구 목록과 도시 인구, 식료품에 관한 기록 등을 활용해 생활상을 재구성한다. 당시 장면을 현재형으로 풀어내는 서술은 상상력을 사용하지만 구체적인 정보는 사료에 연결해 제시한다. 독자는 중세 도시를 걸어 다니는 듯한 문장을 읽지만 그 장면을 구성하는 가구와 식량, 사람 수에 관한 정보에는 당시 문헌이 쓰인다.
사교와 여가에 대한 설명은 중세인이 금욕과 고통 속에서만 살았다는 통념을 흔든다. 종교적 규율을 둘러싼 일상적 예외나 낯선 손님을 빵과 술로 대접하는 관습도 등장한다. 같은 시기에도 신분과 장소에 따라 삶의 모습이 달랐으며, 이를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질병과 위생, 법률 제도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중세인이 무엇을 알았고 무엇을 알지 못했는지 확인한다. 당시의 믿음을 현대 과학의 잣대로 비웃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가진 지식의 범위 안에서 선택을 이해하도록 한다. 현대인이 과거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당시 사람을 조롱하지 않고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추적한다.
번역은 웹툰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그린 이라하와 요오랑이 맡았다. 이라하는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준비하면서 원서를 찾았고 다른 창작자들과도 나누기 위해 번역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두 번역자는 문헌을 확인하고 중세의 언어와 맥락을 검토하는 작업을 수행했으며 역주를 더해 낯선 표현의 이해를 돕는다.
저자는 역사학자이면서 역사소설도 써 왔으며 오랜 기간 중세인의 일상을 연구했다. 이번 책은 연대와 왕조 중심의 중세사에서 한 걸음 벗어나 당시 사람들이 어떤 냄새를 맡고 무엇을 먹었는지 묻는 방식으로 과거를 보여준다. 창작자에게는 생활을 묘사할 근거가 되고 일반 독자에게는 '암흑 시대'라는 단순한 이름 밖의 중세인을 만나는 통로가 된다.
△ 시간 여행자를 위한 중세 사전/ 이언 모티머 지음/ 이라하·요오랑 옮김/ 5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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