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가는 기업은 무엇을 직시하는가' 표지 (시크릿하우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11.2/뉴스1
'오래가는 기업은 무엇을 직시하는가'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평가 항목이나 인증의 개수보다 불편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능력에서 찾는다. 20여 년간 기업 자문을 해 온 박재흠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이념적 구호가 아니라 기업이 사회와 관계를 맺으며 생존하는 조건으로 살펴본다. 성과가 좋아 보이는 조직이라도 공급망이나 환경에 관한 위험을 외면하면 그 비용을 뒤늦게 감당할 수 있다.
저자는 자원과 노동력을 이용하고 공급망과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기업의 특성을 먼저 짚는다. 고객과 협력사, 노동자와 사회의 신뢰가 무너지면 사업을 지속하는 조건도 달라진다.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활동이 다른 사람의 비용으로 이어지는 경우 기업은 단순히 이익만으로 성과를 설명하기 어렵다.
책의 핵심 개념인 '파레시아'는 불이익이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진실을 말하는 용기를 가리킨다. 조직원이 경영진이 듣기 싫어하는 위험을 보고할 수 있는가, 불편한 정보가 이사회까지 전달되는가, 단기 실적과 충돌하더라도 필요한 변화를 실행할 수 있는가가 주요 질문이다. 경영진이 의견을 들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하고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불이익을 받지 않는 절차도 필요하다.
하지만 보고서에 적절한 항목을 채우는 것과 실제 위험을 통제하는 일은 다르다. 저자는 CSR과 CSV, ESG가 발전해 온 과정과 이를 향한 반발을 함께 살피며 명칭과 제도가 변해도 기업 활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어느 개념을 쓰더라도 실제 운영을 바꾸지 않으면 선언에 그칠 수 있다.
유럽연합의 지속가능성 공시와 공급망 실사 제도, 탄소국경조정제도 등은 기업의 조달과 수출에도 영향을 미친다. 다만 규제의 적용 범위와 의무는 수정될 수 있으며 모든 기업이 똑같은 조건에 놓이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규정 하나를 통과하는 방식보다 배출량과 에너지 사용, 노동자의 권리, 공급망의 위험을 실제 사업 운영에 연결해 관리하는 능력을 강조한다.
책은 재무제표에 드러나지 않는 위험에서 출발해 자본시장의 ESG 평가, 인권과 환경에 대한 책임, 자연자본과 생물다양성, 인공지능(AI) 시대의 새로운 위험까지 넓게 다룬다. 각 장 끝에는 '파레시아 체크'를 배치해 조직이 무엇을 측정하고 어떤 질문을 피하고 있는지 점검하도록 한다. AI 기술 역시 생산성을 높일 수 있지만 데이터와 에너지, 책임의 문제를 새로 제기한다.
탄소배출을 계산하거나 정책 문서를 만드는 작업은 출발점이지만 이를 사업부의 목표나 투자 판단에 반영하지 못하면 지속가능한 변화로 이어지기 어렵다. 담당자의 문제 제기가 개인적 용기로 끝나지 않도록 조직의 책임과 권한도 함께 설계해야 한다. 조직의 책임자가 어떤 전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수치가 좋아도 방향이 잘못될 수 있다.
이 책이 묻는 것은 어떤 기업이 높은 ESG 등급을 받을 것인가보다 어떤 기업이 스스로의 약점을 직시할 수 있는가다. 파레시아를 조직문화와 거버넌스에 연결해야 담당자가 바뀌어도 위험을 드러내고 고칠 수 있다. 불편한 문제가 발견됐을 때 이를 숨기지 않고 논의할 수 있는지, 책임자가 개선을 위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 오래가는 기업은 무엇을 직시하는가/ 박재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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