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도시에서 중세사 읽기' 표지 (푸른역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11.3/뉴스1
'유럽의 도시에서 중세사 읽기'는 유럽의 도시 17곳에 남은 건축물과 길, 의례를 통해 중세의 정치와 종교, 경제를 살펴본다. 한국서양중세사학회의 역사학자 16명이 참여해 파리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서로 다른 지역의 기억을 현장과 연결한다. 저자들은 건물이 처음 만들어진 이유와 시대가 바뀐 뒤 그 공간을 이용한 방식까지 살핀다.
중세를 전쟁과 질병, 봉건제와 종교재판만으로 떠올리면 당시 도시가 만든 제도와 문화를 놓치게 된다. 유럽이라는 공동체 의식과 여러 나라의 고유한 정체성은 이 시기에 함께 형성됐다. 저자들은 도시가 단순한 여행 목적지를 넘어 왕권과 신앙, 상업과 학문의 기억을 담은 장소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풀어낸다.
파리는 대학과 학문의 국제적인 교류를 보여주는 무대다. 각지에서 온 학생과 교사가 라틴어로 소통했고 대학 주변에는 그 흔적을 지닌 지명이 남았다. 노트르담 대성당과 루브르의 역사를 통해 도시의 역할이 시대에 따라 달라진 과정도 다룬다.
랭스에서는 프랑스 왕의 축성식과 왕권의 신성성을 살피고, 칼레에서는 영국과 프랑스의 충돌이 남긴 흔적을 읽는다. 아헨은 중세 왕조의 정치적 상징으로 등장하며 나움부르크의 우타 입상은 후대의 민족주의적 기억이 과거 인물의 의미를 어떻게 바꾸는지 살펴보는 소재가 된다. 왕의 즉위 의례는 단순한 축하 행사가 아니라 통치가 정당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정치적 과정이었다.
베네치아의 수호 상징인 성 마르코와 날개 달린 사자의 이야기는 도시의 권위와 해상 교역을 잇는다. 로마는 순례의 기억을 품고,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새로운 로마라는 이름으로 동서의 권력과 문화가 만나는 공간을 보여준다. 종교적 권위의 중심이었던 로마와 아비뇽을 함께 보면 교황권이 놓인 정치적 조건도 비교할 수 있다.
영국과 아일랜드를 다루는 장에서는 헤이스팅스 전투와 노르만 정복, 캔터베리의 성인 숭배, 런던에서의 토착민과 이주민의 관계를 짚는다. 스테이션아일랜드에서는 낯선 순례 전통을, 산티아고에서는 장거리 순례가 만든 길을 추적한다. 왕과 전쟁의 역사 외에도 사람들의 이동과 믿음이 도시의 모습을 형성했다는 점이 드러난다.
정치적인 권력의 흔적을 좇는 글과 종교적 의례를 설명하는 글, 동상과 그림을 해석하는 글이 나란히 놓인다. 여행기의 현장감과 학술적인 설명을 결합하면서 독자가 도시의 현재 풍경에서 과거의 제도와 사람을 찾아볼 수 있게 구성했다. 대학과 학문을 설명하는 글에서는 교육제도의 변화가 중요하고 동상과 성당을 살펴보는 글에서는 이미지와 의례가 핵심이 된다.
왕국 사이의 경계와 지역별 차이, 기독교의 공통된 문화와 각 도시의 독자적인 기억이 함께 등장한다. 오늘날 명소를 이루는 돌과 길은 그곳을 찾았던 여러 세대의 선택과 갈등을 담고 있다. 독자는 각 도시의 대표 유적을 보면서 누가 그것을 지었고 누가 이용했으며 후대가 어떻게 기억했는지를 질문하게 된다.
△ 유럽의 도시에서 중세사 읽기/ 성백용 외 15명 지음/ 4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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