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이여, 세상에 분노하라"…안창홍 '지상낙원' 展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November 03일, PM 06:07

안창홍, 눈물 noon-mool, 2025, Acrylic on photo panel, 90 x 180 cm [Photographer PARK Seoungil]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예술가의 사회적 소명을 강조해 온 화가 안창홍의 개인전 '지상낙원'이 서울 아라리오갤러리에서 막을 올린다. 자본주의와 문명의 허울 이면에 가려진 폭력과 야만 속에서 희생된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치유와 연대를 향한 기도로서의 예술을 지향하는 작가의 의식이 잘 드러나는 전시다.

전시 기간은 4일부터 12월 26일까지다. 이번 전시는 최근 미국 워싱턴 D.C. 아메리칸대학교미술관에서 첫 미국 개인전 '눈물'을 성황리에 마친 안창홍의 작품 세계를 국내에서 크게 만나는 자리다.

3일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안창홍은 "인간의 폭력성은 점점 더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며 "전시 제목인 '지상낙원'은 인간이 만들어 낸 허상에 대한 반어적 표현"이라고 밝혔다.

안창홍은 예술을 단순한 자기만족에 그치지 않고, 역사적 비극과 부조리 속 상처를 발굴하여 변화를 촉구하는 사회적 촉매제이자 소명의식의 실천으로 규정한다. 그는 "눈에 좋아 보이는 것만이 예술이 아니다"라며 "예술가는 세상의 불편한 진실을 포착하고, 분노하고, 고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창홍 '지상낙원' 전시전경 © 뉴스1 김정한 기자.

1953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현재 경기 양평에서 작업 중인 안창홍은 우리 사회가 감추고 싶어 하는 폭력과 야만을 파헤쳐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무쇠 조각과 다게레오타이프 사진 기법 등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최근작 39점을 선보인다.

전시장 1층에는 높이 약 3m, 무게 1.1t에 달하는 거대한 무쇠 조각 '눈먼 자들 전쟁'이 관람객을 압도한다. 포탄이 두상의 얼굴을 사선으로 관통한 모습이다.

2층과 3층에는 인류 최초의 실용 사진술인 다게레오타이프 기법을 회화에 접목한 '지상낙원 얼굴'과 '지상낙원 손' 연작을 전시한다. 거울처럼 매끄러운 은판 사진을 대형 캔버스로 확대해 제주 4·3이나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등 역사적 비극 속에서 희생된 이름 없는 이들의 아픔을 담았다.

3층 '박제' 연작 공간에서는 자본주의와 문명의 허울을 고발한다. 팬데믹 시기 문을 닫은 자연사 박물관 창고에서 폐기된 박제들을 보고 충격을 받아 시작한 작업이다. 죽은 동물들의 눈망울에 눈물을 그려 넣은 화면은 자본과 탐욕의 시스템에 의해 도살당한 한 맺힌 영혼이 여전히 꿈틀대고 있음을 증명하는 치유와 연대의 기도다. 또한 노란 나비는 희생된 동물의 영혼을 위한 진혼의 날갯짓이다.

안창홍은 "참혹한 불구의 박제 더미 속에서 자본과 인간, 문명의 허울과 야만이 내재해 있음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안창홍_지상낙원_포스터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4층에는 소형 캔버스에 익명의 초상을 담은 '이름도 없는' 연작과 시멘트 부조를 활용한 '얼굴' 연작을 선보인다. 대지를 거푸집 삼아 시멘트를 부어 만든 부조는 매립된 역사를 발굴하는 행위다.

안창홍은 "거대한 무쇠 조각이나 참혹한 박제 등 무거운 소재를 통해 관객이 자신의 비겁한 시선을 자각하고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윤리적 통증을 느끼기를 바란다"며 "역사는 땅에 묻혀도 그 상처는 반드시 발굴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는 화려한 세상의 이면에 가려진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시간이다. 거대한 무쇠와 눈물 흘리는 박제, 시멘트 부조가 건네는 침묵의 비명 속에서 관람객은 인간성의 마지막 보루를 확인하게 된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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