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 알았던 남자가 TV에 나타났다…사랑으로 포장된 폭력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November 04일, AM 06:03

'레츠 비' 표지 (문학동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11.4/뉴스1

'레츠 비'는 안정된 가정 안에서 살아가는 여성이 죽은 줄 알았던 남자를 다시 보며 흔들리는 과정을 그린다. 이수진은 주인공 근규의 현재와 과거를 교차시키며 사랑으로 포장된 폭력과 자신의 삶을 되찾으려는 선택을 파고든다.

근규는 의사 남편과 딸이 있는 집에서 아이를 업고 부엌일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결혼생활의 바깥에는 열세 살 어린 동성 연인 애리와 나누는 또 다른 관계가 있다. 겉으로는 평온한 가족생활과 애리에게 기대는 사적인 삶을 동시에 지키려던 근규는 텔레비전 화면에 나타난 최현민의 얼굴을 보는 순간 오랫동안 묻어뒀던 복연과의 사랑과 그 뒤에 벌어진 폭력의 기억을 떠올린다.

유명 부부상담센터 원장으로 활동하는 현민은 한때 근규에게 첫사랑을 알려준 복연의 아들이다. 근규는 과거에 벌어진 사건 이후 현민이 죽었다고 믿었지만, 그는 쇼호스트 정희주의 남편이 되어 화면 속에서 웃는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의 균형은 그 낯선 생존 사실 하나로 깨지기 시작한다.

근규는 자신의 결혼생활을 상담하려는 사람으로 꾸미고 한때 죽은 줄 알았던 현민이 운영하는 센터를 직접 찾아간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채 부부 문제를 묻는 현민과 마주한 뒤 거울 속에는 버렸다고 믿었던 또 다른 자아 'K'가 나타난다. 외면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지금의 관계와 가족생활까지 다시 흔들어 놓는다.

과거 복연은 아들에게 칼을 들고 근규를 향해 도망치라고 외쳤고, 근규는 이후 결혼을 택했다. 애리와 함께 복연이 살던 옛집으로 돌아가면서 당시의 일도 처음으로 말하게 된다. 먼지 쌓인 방에 남아 있던 복연의 노트 한 권은 이미 잊었다고 여긴 시절과 자신이 어떤 관계였는지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작품은 근규 개인의 상처뿐 아니라 주변 여성들이 겪는 억압도 함께 살핀다. 남들이 보기에는 당당한 애리에게도 어린 시절 이루지 못한 사랑의 기억이 있고, 딸의 결혼에 집착하는 근규의 어머니도 자신의 선택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던 과거를 지녀 어머니와 딸 사이에 이어져 온 기대와 억압의 무게를 함께 드러낸다. 비슷해 보이는 가족의 규범이 서로 다른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가 서사의 또 다른 축이다.

6부로 구성된 장편은 근규의 현재 부부생활과 복연을 둘러싸고 오래전에 벌어진 일을 번갈아 배치한다. 작품이 속한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는 장르별 서사와 시각적인 장면 전개를 강조하며, 이 소설은 그중 '드라마' 장르에 들어간다. 인물의 내면에서 시작한 갈등은 잊었던 장소로 돌아가는 행동을 거치며 구체적인 선택으로 옮겨간다.

이수진은 2009년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2013년 중앙장편문학상을 받았다. 2016년 첫 소설집 이후 약 10년 만에 발표한 이번 신작은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근규가 과거를 다시 마주하는 여정은 사랑과 결혼, 가족의 이름으로 자신의 삶을 규정했던 힘이 무엇이며 그 선택권을 어떻게 되찾는지 질문을 남긴다.

△ 레츠 비/ 이수진 지음

ar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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