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점자 '훈맹정음' 탄생하다 [김정한의 역사&오늘]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November 04일, AM 06:00

제100주년 '한글 점자의 날'을 하루 앞둔 3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경기도시각장애인도서관에서 관계자가 점자책을 읽고 있다. ‘한글 점자의 날’은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이라 불리는 송암 박두성 선생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한글 점자를 만들어 반포한 1926년 11월 4일을 기념하는 날로 올해 100주년을 맞았다. 2026.11.3 © 뉴스1 김영운 기자

1926년 11월 4일, 일제강점기 암흑 속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빛이 켜졌다. 송암 박두성이 조선총독부 제생원 맹아부 교사로 재직하며 제자들과 함께 비밀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완성한 최초의 한글 점자, 즉 '훈맹정음'(訓盲正音)을 세상에 정식으로 반포한 날이다.

당시 시각장애인 교육 현장에는 일본어 점자나 선교사 홀이 도입한 불완전한 뉴욕 포인트식 4점 점자만이 쓰였다. 제 나라 말을 읽고 쓸 권리를 박탈당한 조선 맹인들은 이중의 억압에 시달렸다. 이를 지켜본 박두성은 "눈이 멀었다고 마음까지 멀어서야 되겠는가"라며 1920년 독자적인 조선어 점자 연구위원회를 조직했다.

연구는 일제의 엄혹한 감시를 피해 비밀리에 진행됐다. 조선어 사용을 억압하던 총독부의 눈을 피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점으로 변환하는 작업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그는 루이 브라유의 세계 표준 6점 체계를 토대로 한글의 과학적 창제 원리를 온전히 녹여내는 정밀한 작업에 몰두했다.

완성된 훈맹정음은 세로 3점, 가로 2점 등 6개의 점 조합을 바탕으로 초성, 중성, 종성을 규칙적으로 결합하도록 설계됐다. 손끝 감각만으로 자음과 모음을 혼동 없이 직관적으로 식별할 수 있도록 가독성과 촉각적 인지도를 극대화한 것이 핵심이다. 닿소리와 홀소리가 빈틈없이 맞물리는 체계였다.

훈맹정음 반포는 단순한 문자 개발을 넘어선 사건이었다. 시각장애인들에게 글을 읽고 쓸 권리를 돌려줌으로써 교육과 자립의 기틀을 마련했고,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 속에서 우리말을 지켜낸 굳건한 문화적 저항의 표상이 됐다. 훈민정음이 백성을 깨웠듯, 훈맹정음은 암흑에 갇힌 시각장애인을 구원했다.

11월 4일은 오늘날 '한글 점자의 날'이라는 법정기념일로 지정돼 그 뜻을 기린다. 한 세기 전 손끝으로 세상을 읽게 하고자 분투했던 한 교육자의 집념은 여섯 개의 점에 오롯이 남아 지금도 꺼지지 않는 빛으로 숨 쉬고 있다.

acenes@news1.kr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