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와 분쟁' 표지 (한울아카데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11.4/뉴스1
'질서와 분쟁'은 법원과 경찰처럼 공식적인 국가 기관이 없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탐구한다. 사이먼 로버츠는 법을 성문화된 규칙의 목록으로만 보지 않고 분쟁이 조정되는 과정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국가의 강제력이 약하다고 해서 사회에 아무런 질서도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일상에는 오랫동안 형성된 관행과 친족·경제 관계, 다양한 형태의 협상이 존재한다. 저자는 서구의 법 체계만을 기준으로 비서구 사회를 설명해 온 관행을 재검토한다.
연구의 주요 토대는 남부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의 현지조사다. 로버츠는 관습법 고문으로 일하며 츠와나 부족집단, 특히 카틀라족 사이의 갈등 처리 방식을 관찰했다. 사건이 발생한 뒤 어떤 사람이 관여하고 양측이 무엇을 양보하며 관계를 회복하는지 구체적인 사례로 살핀다.
책이 강조하는 전환은 '규칙'에서 '과정'으로의 이동이다. 어떤 규범이 존재하는지 확인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당사자가 회피하거나 직접 대응하고 협상·조정에 나서는 순서를 살펴본다. 분쟁 결과를 승패로만 나누는 재판의 틀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관계의 조정이 중요해진다.
저자는 말리노프스키와 글럭먼, 걸리버 등 선행 법인류학 연구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학자들이 법을 정의하고 현장자료를 해석한 방법이 서로 어떻게 달랐는지 비교한다. 이를 통해 다른 사회의 질서를 관찰하면서 서구의 제도적 개념을 무리하게 적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분쟁 해결은 단지 명시적인 규범을 적용하는 일이 아니라 문화와 사회·경제적 관계가 얽히는 과정이다. 당사자 사이에 앞으로도 유지해야 할 관계가 있다면 합의와 양보의 의미도 달라질 수 있다. 책은 공동체의 연속성과 권력관계를 함께 고려해야 갈등 처리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1979년 원서 초판이 나온 이 책은 '질서와 분쟁'을 주제로 법인류학과 비교법학의 연구 방향을 정리한 저작이다. 제도적 법의 유무를 넘어 수렵·채집인, 정착 사회와 국가 형성 등을 검토하며 '싸움과 대화', '규칙과 권력'의 관계로 논의를 이어 간다. 이철우가 한국어로 옮겼다.
현대의 조정과 중재, 회복적 사법을 살펴볼 때에도 이러한 관점은 참고할 만하다. 공식 재판이 아니어도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과정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법이 사회를 지탱하는 유일한 장치인지보다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절차를 통해 함께 살아가는지 묻는다.
△ 질서와 분쟁/ 사이먼 로버츠 지음/ 이철우 옮김/ 256쪽
art@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