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흔들린 어른이 읽는 그림책 이야기, 실직과 상실 뒤의 삶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November 04일, AM 10:03

'멋진 구석의 세계' 표지 (샘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11.4/뉴스1

'멋진 구석의 세계'는 삶이 흔들릴 때 어른이 그림책 속 인물의 선택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을 담는다. 안지혜는 삶의 여러 자리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듯했던 시기에 읽은 그림책 35권을 자기 삶의 장면과 나란히 놓는다.

저자는 계속해서 어긋나는 인간관계와 원하지 않은 변화 속에서 모든 잘못이 자신에게 있는 것처럼 자책했다. 그림책 '나의 구석'에서는 빈 구석에 숨었던 까마귀가 그곳을 자기만의 공간으로 꾸미는 장면을 만난다. 피하고 싶은 자리에 머무는 시간이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다시 움직일 힘을 모으는 과정이라는 해석이 여기서 시작한다.

'내가 여기에 있어' 속 뱀은 밖으로 나오라는 주변의 기대와 무관하게 동굴에 머무르면서 자기 자리를 지킨다. 남이 정해 놓은 행복의 형태를 따르지 않더라도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인어를 믿나요?'에 등장하는 풍만한 몸의 할머니가 손자를 응원하는 장면은 남의 평가 때문에 미워했던 자기 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한다.

가족을 향한 감정은 또 다른 그림책들에서 풀어낸다. '거울을 든 아이'를 읽으며 부모와 동생에게 항상 책임져야 한다는 장녀의 부담을 돌아본다. '난 커서 바다표범이 될 거야'에서는 바다로 떠나는 엄마를 따라가며 어머니를 엄마라는 역할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여성으로 바라본다.

혼자만의 구석을 떠나 자기를 인정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자신에게 힘을 보태준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는 과정도 중요하다. 이별 뒤 새벽 청소를 할 때 곁을 지킨 동료들과 묻지 않고 집과 밭을 내어준 친구들이 저자의 기억에 남아 있다. 자기 고통을 다시 해석하는 일은 주변의 도움과 타인의 처지를 알아보는 일로 이어진다.

'외눈 고양이 탄게'와 '나를 봐'는 우정을, '첫사랑'과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는 관계의 여러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사랑하는 고양이가 죽은 날'과 '점옥이'를 읽을 때는 사과와 애도를 생각한다. 누군가를 함부로 이해했다고 단정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지키며 고통을 억지로 해결해 주려는 행동보다 길목의 의자나 다리처럼 곁에 머무는 태도가 함께 제시된다.

책은 낯선 가장자리를 거치는 시기, 기다림의 시간, 자신을 구할 가능성 등으로 독서의 흐름을 나눈다. 사랑과 연대, 가족, 외로움과 회복을 다루는 작품들을 엮어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그림책의 장면이 삶의 여러 고비를 지나온 어른의 기억과 어떻게 만나는지 살핀다. 20년 가까이 그림책을 만들어 온 안지혜의 작업 경험도 그 과정에 놓여 있다.

이별이나 실직, 가까운 사람과의 갈등은 당사자가 시간을 들이더라도 곧바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스스로를 탓하는 질문을 지금 자신의 모습을 알아보는 질문으로 바꾸면 같은 시간도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림책을 어린이의 읽을거리로만 한정하지 않고 어른의 상실과 관계를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자신의 삶을 다시 움직이는 계기를 생각하는 매개로 삼았다.

△ 멋진 구석의 세계/ 안지혜 지음

ar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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