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주변에서 익힌 28년간의 생존 기술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November 04일, AM 10:03

'권력의 복도' 표지 (북레시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11.4/뉴스1

'권력의 복도'는 2024년 12월 3일 계엄의 밤에 멈춰 선 정치 실무자가 지난 수십 년간 권력 주변에서 익힌 생존의 기술을 돌아본다. 김범준은 1996년부터 여의도에서 일한 가상 인물 김인백을 따라 권력의 주변부에 쌓인 침묵과 책임을 묻는다.

국회 담장을 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김인백은 담 아래에 남아 망설인다. 소설은 사람들이 국회 안으로 향하는 계엄 선포 당일의 장면에서 출발해 정당 공채에 합격했던 1996년 봄으로 시간을 되돌린다. 정치인의 이름 뒤에 가려진 당직자와 보좌관의 시선이 경선, 공천, 대선, 탄핵의 순간을 차례로 관통한다.

김인백에게 정치는 연단의 연설보다 명단과 회의 자료를 정리하는 일에 가깝다. 대의원 명부를 만들고 면담 순서를 정하며 여론조사 결과 가운데 어떤 숫자를 보고할지 고른다. 문서 한 장의 순서와 분류가 누군가의 진입을 돕고 다른 사람을 밖으로 밀어내지만 명단에 있는 사람들의 운명은 달라져도 실무자의 이름은 공식 기록에 좀처럼 남지 않는다.

신한국당 공채로 시작한 여정은 1997년 경선과 대선, 2000년대 공천 싸움, 2014년 세월호 참사와 선거를 거쳐 2016년 탄핵 국면으로 이어진다. 인백은 중요한 사건을 목격하면서도 정치적 유불리와 표의 움직임을 먼저 계산한다. 책은 역사적 사건을 배경에 놓되 인물의 구체적인 선택과 내면은 허구로 구성한 정치소설이다.

자신이 도운 당대표를 다른 국면에서는 끌어내리는 과정도 인백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관계가 바뀌고, 과거의 선택을 설명할 언어도 달라진다. 명령을 내린 사람과 지시를 실행한 사람 사이에서 책임이 사라지는 구조가 조직 안에서 책임을 인정하기보다 다음 자리로 옮기는 정치적 생존의 방식과 맞닿아 있다.

아내 미경과 아들 도현의 이야기는 국회 밖에서도 이어지는 침묵을 비춘다. 많은 의원의 성향과 이해관계는 정확히 파악하는 인백이 정작 자신이 실제로 무슨 일을 하는지 묻는 가족의 소박한 질문에는 끝내 분명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미국에서 미경과 영어 단어 'integrity'의 뜻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상황마다 다른 얼굴로 살아온 자신의 분열을 돌아보게 한다.

소설은 '여의도로 가는 기차'와 '권력의 복도', '낡은 건물', '이백삼십사', '담' 등 다섯 부분으로 정치 현장의 변화와 개인의 시간을 엮는다. 계엄의 밤을 앞뒤에 배치해 선거 때마다 편을 고르며 보낸 긴 경력이 최후의 선택 앞에서 어떤 의미인지 되짚는다. 2024년까지의 선택을 정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2024년부터 2026년까지를 배경으로 하는 에필로그를 실어 사건 이후로 소설의 시간을 이어간다.

김범준은 약 30년간 당직자와 보좌관, 선거 캠프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썼다. 작가의 말에 담긴 "인물은 허구로, 침묵은 사실대로"라는 원칙은 실제 역사와 소설의 경계를 분명히 한다. 6일 발행 예정인 이 작품은 누가 명령했는지만이 아니라 누가 묵묵히 그 명령을 수행했는지도 질문한다.

△ 권력의 복도/ 김범준 지음

ar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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