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리 (출처: Fawcett Publications,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13년 11월 5일, 영화 역사상 가장 강렬한 여성 캐릭터로 꼽히는 '스칼렛 오하라'를 연기한 영국의 전설적인 배우 비비안 리가 영국령 인도 다르질링에서 태어났다. 20세기 은막을 화려하게 수놓은 불꽃같은 배우의 역사가 시작된 날이다.
어린 시절부터 무대에 매료된 그는 런던 왕립연극학교(RADA)에서 정통 연기를 익히며 배우의 길을 걸었다. 1935년 연극 '미덕의 가면'을 통해 단숨에 런던 연극계의 샛별로 떠오른 그는, 당대 최고의 배우이자 훗날 평생의 동반자가 된 로런스 올리비에를 만나며 예술적 깊이를 한층 더해 나갔다.
그의 이름을 세계 영화사에 아로새긴 작품은 1939년 개봉한 대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다. 140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쟁취한 남부 귀족 여인 스칼렛 오하라 역은 그를 세계적인 스타로 끌어올렸다. 전쟁과 몰락 속에서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며 삶을 개척해 나가는 당찬 여인의 모습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며 영국인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비비안 리는 미모에 기댄 스타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늘 한계에 도전했다. 1951년 엘리아 카잔 감독의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몰락한 남부 귀부인 블랑쉬 뒤부아 역을 맡아 처절하리만치 섬세한 내면 연기를 선보였다. 이 연기로 그는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품에 안았다.
그러나 눈부신 성공 이면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만성 결핵과 극심한 조울증이라는 이중고 속에서도 진통제와 전기 치료를 버텨내며 끝까지 무대와 카메라 앞을 지켰다. 혼신의 힘을 다해 배역의 영혼을 흡수했던 그의 치열한 연기 철학은 자신의 정신과 육체를 갉아먹는 고통을 동반하기도 했다.
결국 1967년 7월 8일 53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으나, 그가 남긴 예술적 유산은 10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빛나고 있다. 단순히 아름다운 여배우를 넘어 인간의 복합적인 내면과 비극적 서사를 온몸으로 웅변한 진정한 예술가로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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