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제 셰프
초등학교 시절 꽁치는 저녁상에 자주 오르던 생선 중 하나였다. 동네를 순회하던 생선 장수의 메가폰에서는 오징어, 꽁치, 가자미, 고등어 같은 이름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고기가 귀한 시절이라 뼈까지 먹을 수 있던 꽁치는 오히려 버릴 부분이 적었다.
군대 시절에 꽁치국은 훈련소부터 나왔다. 무 몇 조각에 꽁치가 튼실하게 들어 있었다. 배가 고파 먹을 만했지만 조금만 식어도 비린 맛이 강하게 올라왔다. 자대 배치 후에는 꽁치국이 나오면 표정이 일그러졌다. 제대를 앞둔 고참들은 숟가락을 놓고 나가기도 했다. 가끔 푸념하면 동기인 취사병은 매뉴얼대로 조리해야 한다면서 맑은 꽁치국을 계속 끓여댔다.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 해안도로에서 상인들이 지역 특산물인 꽁치 과메기를 해풍에 말리고 있다. (뉴스1DB) © 뉴스1 최창호 기자
꽁치가 주요 단백질 보급원이었던 시절
미국에 가기 전까지 꽁치는 그다지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이었다. 특히 군대에서 먹었던 기억으로 당최 입맛이 돌지 않았다. 그러나 점점 한국 음식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면서 꽁치 통조림을 보면 꼭 한 개씩 사두곤 했다. 가격도 당시에 2달러 정도이니 저렴한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레스토랑에서 요리 실습을 위해 미국 동부 필라델피아에서 집을 구해야 했다. 두 달 정도 머물 숙소를 구하다 렌트를 포기하고 유스호스텔에 사정해서 투숙을 시작했다. 하루에 20달러씩 내기로 했다. 매일 아침 10시면 반드시 숙소를 비워야 하고 오후 4시가 돼야 재입장할 수 있었다. 군 시절과 다름없는 불편한 숙소였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미국 생활 시작하며 꽁치 맛 알아가
어느 날 한국 할아버지가 내 옆 침대로 배정됐다. 자신을 미국에서 큰돈을 벌고 사업을 하던 사람으로 소개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면 모두가 주방에서 간단한 식사를 만들었다.
그 할아버지는 가방에서 한국산 꽁치 통조림을 꺼내 요리를 시작했다. 자신이 미국에 와서 백인 여성과 결혼도 했고 꽤 재산도 모았다고 했다. 내가 질문을 하려고 하니 꽁치 통조림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다. "일단 무를 약간 깔고 말이야, 통조림에서 국물을 살짝 버려. 다 버리진 말고 말이지. 그리고 마늘 약간, 고춧가루 약간만 넣어주면 되지. 미국에서 꽤 요긴한 식재료라니까."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수산캔 제품. (뉴스1DB) © 뉴스1 박지혜 기자
호스텔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알려준 꽁치찌개
부글부글 끓는 찌개로 식사를 마치고 그는 별다른 얘기 없이 숙소로 올라갔다. 다음 날 아침은 큰 소란으로 잠이 깼다. 남자 도미토리에서 물건 도난 신고가 있었고, 투숙객들은 저마다 자기 가방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나는 여권과 노트북이 무사해서 안심했다. 대신 작은 보조 지갑 깊숙하게 들어있던 20달러 지폐가 없어졌다. 그 가운데 사라진 투숙객은 어제 그 한국인 할아버지였다.
호스텔 매니저에게 다음 날 숙박비를 내러 갔다. 그는 운전 중에 필라델피아 남쪽 지역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던 그 한국 노인을 발견했다고 내게 말해줬다. "경찰을 부르려다가 말았어. 좀 짠하기도 하고 말이야."
내 지갑 속 꼬깃꼬깃한 지폐까지 빼 가
필라델피아의 인턴 생활을 끝내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다.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았던 때도 있었고 다시 바닥으로 떨어진 것 같은 순간도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지난주에 장을 보다가 세일 중인 꽁치 통조림을 보고 집어 왔다. 미국 생활 중 먹던 음식이 생각나서 다시 꽁치찌개를 끓여 먹었다. 이번엔 냉장고 바닥에 쟁여놓은 묵은지를 깔아 넣고 국물도 넉넉하게 잡았다.
생선치고는 포만감을 주는 데다 묵은지와 함께 먹으니 밥 한 끼가 뚝딱이다. 해가 일찍 지고 밤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요즘, 뜨끈한 꽁치찌개로 끓여보는 걸 권해드린다. 찌개 냄새와 함께 예전 소소한 추억도 보글보글 피어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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