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없이 건배하고, 경계 없이 섞는다…비엔나가 말하는 음식의 미래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November 06일, AM 05:02

[비엔나(오스트리아)=글·사진 이데일리 김은아 기자] 오스트리아 비엔나는 한때 유럽의 중심이었다. 수백 년간 유럽에 영향력을 행사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도시로, 호프부르크 궁전부터 도심을 두른 링슈트라세의 웅장한 건축물까지 거리 곳곳에 제국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렇다고 도시의 감각까지 과거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미술사박물관의 웅장한 돔홀에서는 DJ 파티가 열리고, 오래된 철도 고가 아래에서는 전자음악이 흐른다. 물려받은 유산은 지키되, 새로운 문화로 채워나가려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풍부한 과거를 품은 비엔나의 시선은 미래를 향하고 있다.
지난 10월 1일 열린 '퓨처 푸드 위크' 개막식 현장
지난 10월 1일 열린 '퓨처 푸드 위크' 개막식 현장
◇전통에 새로운 맛 더한 비엔나의 미식 실험

지난 달 1일부터 열흘간 열린 ‘퓨처 푸드 위크’는 비엔나의 이러한 일면을 보여준다. 미래의 식탁은 어떤 모습일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탐구하는 행사다. 단, 진지하고 심각하기보다 한 테이블에 둘러 앉아 식사를 나누는 축제에 가깝다.

행사는 푸드 매거진 ‘팝챱’의 주최로 2024년 시작됐다. 첫해에는 도심의 식당 몇 곳을 중심으로 소박하게 진행됐지만, 뜻에 공감하는 셰프·예술가들이 동참하고 비엔나 푸디(미식가)들이 입소문을 내면서 3회만에 도시 전역에서 열리는 축제가 됐다. 올해는 열흘간 40여개의 팝업, 강연, 체험 프로그램 등이 이어졌다.

빵집에서 열린 개막식은 퓨처 푸드 위크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냈다. 요란한 개막 선언 없이 사람들은 도넛과 와인을 즐기며 개막을 축하했다. 축제의 창립자 마티아스 발가비도 편안한 티셔츠 차림으로 도넛을 먹고 있었다. 그는 축제를 고안하게 된 동기를 묻자 “진취적인 요리사들과의 협업을 통해 음식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답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식사는 먹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음식은 단지 식탁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를 형성하고, 경제를 움직이죠. 그러나 사람들은 점점 음식의 근원과 가치를 잊어가고 있어요. ‘퓨처 푸드 위크’를 통해서 식당과 생산자가 만들어내는 문화적 영향력을 떠올리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캐주얼한 스탠딩 파티에도 그가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녹아있었다. 개막식이 열린 빵집 ‘요제프 브로트’는 전통 제빵 기법을 복원해 사워도우를 굽고, 오스트리아 고유 곡물 품종을 부활시키는 활동을 하는 거점이다. 이곳의 파티시에 요제프 베그하우프트는 개막식을 위해 전통 도넛 ‘부흐텔’을 요즘 입맛으로 해석해 내놓았다. 미쉐린 2스타 셰프 루카스 므라츠가 손을 보태 살구에 하바네로 고추를 더한 잼으로 전통에 유머러스한 파격을 더했다.

“비엔나 미식 신(scene)은 아주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요. 매주 새로운 식당이 문을 여는데, 괜찮은 식당을 추리기에도 바쁘죠. 콘셉트도 독특한데, 요즘에는 융합이 대세인 것 같아요.”

이튿날 퓨처푸드위크 팝업 행사에서 만난 한 미식가는 비엔나 미식 신을 이렇게 설명했다. 오스트리아식 파스타에 김치를 접목하거나, 중국식으로 만든 두부에 오스트리아 양념을 곁들이는 식이다. 행사에도 이러한 트렌드를 엿볼 수 있었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국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를 비엔나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초청하는 디너 이벤트가 대표적이었다.

타이 허브를 듬뿍 넣은 라자냐, 쏨땀에 이탈리아 물소 치즈를 곁들인 샐러드 등 태국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의 정체성이 한데 어우러진 독창적인 요리가 테이블 위에 펼쳐졌다. 레스토랑 밖은 단 하루만 선보이는 특별한 메뉴를 맛보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로 늦은 밤까지 북적였다.

◇술 없는 건배와 나눔…‘모두를 위한 식탁’

Z세대 사이에서는 ‘술 취하는 것은 더이상 힙하지 않다’는 공감대가 있다. 비엔나에서는 이미 와인 없는 저녁 식사가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인정받고 있다. 올해 퓨처푸드위크에서 처음 선보인 논알코올·저알코올 음료 박람회 ‘운베슈비프스트’가 그 방증이었다. 유럽 전역에서 30여개 논알코올 음료 브랜드가 한자리에 모인다는 소식에 티켓 400장은 판매와 동시에 금세 동이 났다. 행사장에서 와인잔을 한 손에 들고 진지하게 테이스팅을 진행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일반적인 와인 박람회와 다를 바 없었다. 단지 맨정신이라는 것이 다를뿐. 방문객들과 생산자들 사이의 대화에서는 유기농, 친환경 등의 단어가 자주 오르내렸다.

이번 행사의 기획자이자 무알코올 보틀샵을 운영하는 프리데리케 두메는 “논알코올 음료는 곧 포용성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회적 모임에서도 알코올 섭취가 필수적이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논알코올 음료를 소개해 다양한 이유로 음주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식탁에서 소외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지속가능한 미식을 지향하는 책임감도 엿보였다. 슈바르차강에서 친환경으로 생선을 양식하는 ‘피쉬 바’에서는 생선의 머리부터 지느러미까지 어느 한 부위도 버리지 않고 요리하는 코스 요리를 구성했다. 셰프들의 컬래버레이션 디너에선 참가자들의 식사 비용을 전부 지역 푸드뱅크에 기부했다. 음식의 미래를 자연,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찾은 셈이다.

‘퓨처 푸드 위크’는 미래의 식탁을 상상하며 무엇을 지키고 다음 세대에 전할지 돌아보는 자리였다. 비엔나가 내놓은 답은 경계 없는 연결이었다. 전통에 다른 나라의 맛을 더하고, 술을 마시지 않는 이에게도 잔을 건네고, 한 끼의 즐거움을 이웃과 나눴다. 그 중심에는 여럿이 식탁에 둘러앉는 시간이 있었다. 서로 다른 취향과 삶의 방식이 함께할 수 있는 식탁. 비엔나가 바라는 음식의 미래는 그 모습에 가까웠다.
와인 없이도 함께 건배하고, 남김없이 요리했다…비엔나 미식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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