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쿡 (출처: Unknown autho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728년 11월 7일, 영국 요크셔주 마턴의 가난한 소작농 집안에서 제임스 쿡이 태어났다. 밑바닥 농가 출신인 그는 석탄 운반선 견습 선원으로 거친 바다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수학과 천문학, 탁월한 측량술을 익혀 항해장이자 수로장교에 올랐고, 훗날 '캡틴 쿡'이라 불리는 전설의 서막을 열었다.
1768년 결행한 1차 항해는 그의 이름을 전 유럽에 각인했다. 공식 명분은 타히티섬에서 금성의 태양면 통과 현상을 관측하는 일이었으나, 비밀 임무는 남태평양에 숨겨진 미지의 남방 대륙 탐색이었다. 쿡은 엔데버호를 이끌고 뉴질랜드 해안선을 정밀 측량해 두 개의 섬으로 이뤄졌음을 입증했고, 오스트레일리아 동해안을 최초로 탐사해 뉴사우스웨일스라 명명하며 영국 영토로 선포했다.
그의 항해는 과학과 의학의 승리였다. 원거리 항해에서 선원의 목숨을 앗아가던 괴혈병을 막고자 쿡은 식단 개선과 양배추 절임 배급, 선내 청결 유지를 철저히 지시했다. 장거리 항해 동안 단 한 명의 선원도 괴혈병으로 잃지 않은 기록은 해양계에 충격을 안겼고, 그의 위생 관리는 원양 항해의 새 표준이 됐다.
이어진 2차 항해에서 쿡은 인류 최초로 남극권에 진입했다. 혹한과 빙벽을 뚫고 수차례 남극권을 넘나들며,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온화하고 비옥한 남방 대륙의 환상을 완전히 깨뜨렸다. 고대 프톨레마이오스 이래 2000년간 지도를 지배해 온 지리학적 미신을 끝내고 현대적 지구 모형을 확립한 순간이었다.
북극해로 향한 3차 항해는 북서항로 개척이 목표였다. 베링해협을 통과해 알래스카를 조사했고, 서구인 최초로 하와이 제도를 발견했다. 그러나 1779년 하와이 케알라케쿠아만에서 원주민과 무력 충돌이 벌어졌고, 쿡은 해변 난투극 끝에 51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쿡의 탐험은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지 수탈이라는 짙은 그늘을 남겼으나, 지도 위 공백을 채운 과학적 공헌은 뚜렷하다. 나침반과 육분의, 정밀 관측 기록으로 태평양의 장막을 걷어낸 그의 발자취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가 남긴 위대한 탐험사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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