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금리 인하 기대감에…보험사, 장기채 대거 매입

경제

이데일리,

2025년 6월 03일, 오후 08:44

[이데일리 최정훈 이수빈 기자] 국내 보험사가 올해 1분기 들어 20년 이상 장기 국고채를 대거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는 기준금리 인하 기조와 맞물린 결과다. 금리가 하락하면 채권 가격은 오르기 때문에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장기 국고채 매수에 나선 것이다. 보험사가 일제히 장기 국고채 순매수로 돌아선 건 5년 만에 처음이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3일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이데일리가 확보해 분석한 결과 올해 1분기 보험사의 20년 이상 장기 국고채 순매수 규모는 총 878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생보사는 4302억원, 손보사는 4478억원을 순매수해 2020년 이후 처음으로 동시 순매수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22~2024년까지 3년간 이어진 장기채 순매도 흐름과는 대조를 이룬다. 특히 생보사는 2023년 한 해에만 3조 3490억원을, 2024년에는 2조 9520억원을 순매도했다. 손보사도 2023년에는 1조원 이상을 팔았고, 2024년엔 매수로 전환했지만 규모는 3420억원에 불과했다.

이번 장기채 순매수는 시점상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변화와 맞물려 있다. 한은은 지난달 29일 기준금리를 2.50%로 인하했다. 지난해 10월 이후 7개월간 네 번째 인하다. 한은은 지난해 10~11월 두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내렸고 올해 들어서는 지난 2월에 이어 두 번째 인하했다. 이에 보험사는 만기 구조가 긴 국고채를 선제로 포트폴리오에 편입해 금리 저점 구간에서의 수익률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IFRS17 정착 이후에는 포지션(채권 매도 또는 매수 투자 상태)을 유연하게 가져가는 게 가능해졌고 금리 하락을 염두에 둔 장기물 비중 확대를 다시 논의하고 있다”며 “기준금리보다 시장금리 하락이 빠르게 나타난 점도 채권 매입을 유도한 배경이다”고 설명했다.

보험업계는 이번 장기채 순매수가 단기 리밸런싱(투자 재조정) 차원을 넘어선 흐름일 수 있다고 해석한다. 올해 1분기를 기점으로 금융시장 전반의 금리 기대치가 하향 안정화하고 있고 보험사도 본격적으로 듀레이션(자산과 부채의 만기 구조) 확대와 금리 하락 구간(채권 가격 상승 구간) 선점을 위한 전략적 대응에 나섰다는 평가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전까지는 회계 규제에 얽매인 대응이 많았지만 지금은 리스크 테이킹(투자 위험 감수)을 할 수 있는 환경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금리 인하가 연속성 있게 이어진다면 올해 하반기엔 매수 규모를 더 늘릴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보험사가 장기 국고채 매수를 늘리는 또 다른 배경엔 고금리 채권의 만기 도래도 거론된다. 보험사는 지난 2006~2011년 발행한 연 4~5%대 국고채를 총 20조 8854억원 보유 중인데 이 중 2026~2029년에 만기가 집중됐다. 2029년 한 해에만 5조 4829억원, 2028년 3조 8816억원, 2026~2027년에도 각각 3조원대를 상환해야 한다. 따라서 자산 운용 상 재투자와 자산·부채의 만기를 맞추기 위해 장기 국고채 매수 수요가 구조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자산과 부채의 만기를 맞추는 것이다”며 “국고채를 사들인 후 중간에 매각하지 않고 보유한 물량이 상당하다. 채권 만기가 다가오면서 다시금 갈아타려는 대기 물량이 쌓이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국고채 전체 보유잔고 중 20년물의 비중은 계속 하락세를 나타냈다. 2020년 말 기준 생보사 기준 31.1%였던 20년물 비중은 올해 3월 말 현재 21.9%까지 내려왔다. 손보사 역시 같은 기간 20.0%에서 11.6%로 떨어졌다. 따라서 보험사가 20년물을 최근 들어 선별적으로 매입을 재개한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