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인사제도 혁신은 정년연장의 전제조건

경제

이데일리,

2025년 6월 04일, 오전 09:12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작년부터 뜨겁게 달아온 정년연장 논란이 평행선을 달리며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현재 법정정년은 만 60세로 50~59세 취업자 약 670만 명이 10년 이내에 은퇴한다. 인구 감소 시대에 이 많은 근로자가 퇴직하면 노동력 부족 사태가 심각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더욱이 국민연금 개시 연령이 65세로 늘어나면서 정년 후 5년 정도의 소득 공백기가 발생해 노인 은퇴자들을 대거 빈곤으로 내몰 수 있다.


노동계는 국민연금 수령 시기에 맞춰 법정정년을 65세로 상향할 것을 주장한다. 반면 기업들은 정년연장의 선행 조건으로 연공서열형 임금 구조의 개편을 요구한다. 현재의 임금 체계는 근속연수가 늘어나면 임금이 상승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정년이 연장되면 그만큼 인건비 부담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법정정년을 65세로 연장해도 그때까지 일할 수 있는 근로자는 소수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한다. 지금도 법정정년이 있지만 실제로 지켜지지 않는다. 정규직 근로자 중에서 정년을 채우고 퇴직하는 비율은 10~15% 수준이다. 공무원이나 교원을 제외하면 이 수치는 현저히 낮아진다. 대부분의 민간기업 근로자는 정년 전에 여러 가지 이유로 직장을 떠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에 사업장 휴·폐업, 구조조정, 권고사직 등에 의해 정년과 무관하게 퇴직한 ‘비자발적 실직자’는 137만 3000명에 이른다. 전년 대비 8.4% 증가한 수치로 앞으로 더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40대와 50대의 비자발적 실직자 증가율은 각각 20.7%와 27.1%로 다른 연령대보다 가파른 증가율을 보였다.

조기 퇴직자의 평균 퇴직 연령은 51.2세다. 법정정년인 60세보다 약 9년 이른 시점에 퇴직한다. 문제는 퇴직한 중년 근로자가 재취업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40~50대 퇴직자는 생산직이건 사무직이건 대체로 간부급 관리자로 한 회사에서 오랜 시간을 근무한다. 근로조건이 양호해 이직률이 낮은 대기업은 인사 적체가 심해 직원의 상당수가 관리자 직급을 맡고 있다.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전자는 직원의 1/3이 간부급 관리자라고 한다.

우리 기업에서 정규직 근로자는 연차가 쌓이면 관리직으로 올라간다. 유능한 직원은 경력 사다리를 타고 빠르게 승진해 팀장, 부서장, 임원이 돼야 한다. 생산직도 조장, 반장, 직장으로 위계와 역할이 명확하다. 직급이 오를수록 권한과 책임이 커지며 이에 상응해 급여와 대우도 달라진다.


수십 년 동안 한 직장에서 일한 관리자는 직급과 임금이 올라가는 것과 반비례해 전문성과 역량은 낮아진다. 이 부서 저 부서를 관리자로서 순환 근무하며 아는 것은 많지만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연공서열 제도의 문제다. 나이가 들면 다 현장과 실무를 떠나 관리자가 되는 것이다. 한 부서에서 한 가지 일만 오래 하면 무능력하다고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기업의 공채 관행도 관리직을 우대하고 전문직을 홀대하는 문화를 부추긴다. 입사 동기보다 승진이 늦어지면 패배감을 느낀다. 연령이 어리거나 기수가 낮은 후배가 부서장이나 상사로 오면 수치심에 사로잡힌다. 일부 대기업은 승진경쟁을 독려하기 위해 삼진 아웃제도를 운영한다. 승진에서 동기보다 세 번 누락하면 낙오자로 찍혀 퇴사를 압박받는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주특기 업무가 없는 관리자는 퇴직해 노동시장에 나와서 경쟁력을 갖지 못한다. 실무 능력이 미흡한 고임금의 관리자에 대한 수요는 거의 없다. 전형적인 인력-일자리 미스매치다. 중장년 퇴직자가 전문성을 인정받아 동업종이나 이업종의 새로운 관리직으로 수평 이동하는 예는 극히 드물다. 대다수는 이전 직장의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저임금의 단순 노무직에 재취업하게 된다.

우리 기업의 인사제도는 고도성장과 인구증가의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졌다. 기업이 급성장해 조직이 커지고 직원이 늘어나며 많은 관리자가 필요했다. 한번 입사하면 정년까지 오래 근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변했다. 평생직장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근로자가 한 회사에서 평생 일하며 정년을 맞이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여러 직장을 옮겨 다니더라도 정년까지 전문성을 인정받고 대우받는 것이 진정한 정년연장이다. 인사제도의 혁신 없이는 법정정년을 연장해도 아무 소용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