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원전 수출이 가능한 국가는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한국 등 5개국뿐이다. 이 중 중국·러시아는 미국 및 유럽과의 갈등으로 수출에 제약을 받고 있어 과거 세계 최고 수준의 시공 능력과 안전성을 자랑했던 한국 원전산업에 새로운 기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지난 2022년 한국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공식 폐기하고 원전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믹스 재편에 나섰다. 이후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원전 수출 확대, SMR(소형모듈원자로) 개발, 민관 공동 펀드 조성, 생태계 회복 프로그램 등 다각적인 정책이 본격 가동됐다.
지난해 체코 원전 수주와 신한울 3·4호기 프로젝트는 무너졌던 원전 생태계 복원의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특히 신한울 3·4호기는 각각 2032년과 2033년 준공될 예정으로, 2016년 새울 3·4호기 착공 이후 8년 4개월 만의 신규 원전 건설이다. 총사업비 11조7000억원, 연인원 722만명이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로, 기자재 공급사 등 중소 협력업체들의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최근 산업 현황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에 따르면 2023년 국내 원자력 산업 총 매출은 32조1556억원으로, 전년도 25조4234억원보다 26.5% 증가했다. 같은 기간 투자액도 9조2968억원에서 10조718억원으로 8.3% 늘었다.
◇정책 일관성 중요…인력 양성도 필요
전문가들은 이 같은 회복세를 지속하기 위해선 정책의 일관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당초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2038년까지 신규 대형 원전 3기를 짓겠다는 계획이었지만 결국 2기로 축소됐다. 또 지난해 ‘2050 중장기 원전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이마저도 지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원전 분야 공급망과 기술 인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지속적인 일감이 공급돼야 한다”며 “한번 무너진 생태계를 다시 되살리는 데는 막대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한국 원자력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민간 진입을 제한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법은 발전, 송전, 배전, 전기 판매 등 전기사업을 하려는 경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원자력 발전사업에 대해서는 허가 요건이 엄격하고 민간 참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사실상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충분한 기술력과 자본을 보유한 민간 기업이 원전 사업에 참여하거나 SMR 등 차세대 기술에 투자하려 해도 현실적인 제약을 받는다.
반면 미국은 민간 기업이 원자력 발전소를 소유·운영하고 전력을 직접 판매하는 구조다. 듀크 에너지(Duke Energy)나 콘스텔레이션 에너지(Constellation Energy) 등이 대표적이다. 프랑스도 국영 전력공사(EDF)가 중심이지만, 민간 기업의 참여가 가능한 구조다.
EU는 소형모듈원자로(SMR)와 차세대모듈원자로(AMR)를 넷제로산업법(NZIA: Net Zero Industry Act)에 포함시켜 차세대 원전 기술을 육성 중이며, 미국 역시 최근 의회 하원에서 통과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세제 혜택 개편안에 SMR을 비롯한 원전 생산세액공제(PTC) 조항이 유지됐다.
김성중 한양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세계는 지금 산업, 안보, 경제 주권을 새롭게 설계하고 있으며, 원자력은 그 중심에 있다”며 “이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한국도 생태계 복원, 인재 양성, 민간 참여 확대, 제도 개편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