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경기 부양책 시급하지만 과도하게 의존해선 안돼"

경제

이데일리,

2025년 6월 12일, 오후 06:58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2일 경기 회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면서도, 과도한 경기 부양책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정부가 내수 침체와 잠재성장률 하락에 대응해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준비 중인 가운데 나온 경고의 목소리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한국은행 창립 제75주년 기념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는 이날 한은 창립 75주년 기념사에서 “급하다고 경기부양 정책에만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사후적으로 더 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신중한 정책 접근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총재는 평소에도 과도한 통화·재정 정책을 ‘진통제’와 같은 약물 처방에 비유하며 ‘적정한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거시 경제학자이자 오랜 기간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근무하면서 다양한 국가의 경제정책의 성패 사례를 접한 그의 소신이다.


그는 “일례로 (경기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지나치게 낮추면 실물경기 회복보다는 서울 등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며, “지난 3월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이 연율 기준으로 약 7% 상승했으며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세도 확대되고 있다”고 경계했다.

내수 침체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는 건설투자 부진의 가장 큰 이유도 코로나 19 대유행 시기 급격히 증가했던 부동산 관련 부채가 조정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손쉽게 경기를 부양하려고 부동산 과잉투자를 용인해온 과거의 관행을 떨쳐내야 한다”면서 “현 상황에서 경기회복을 위한 부양책이 시급한 것이 분명하지만 동시에 성장잠재력의 지속적인 하락을 막고 경기변동에 강건한 경제구조를 구축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한은은 지난달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이 0.8%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위기 때를 제외하면 지난 30년간 가장 낮은 성장률이다.

이 총재는 “최근 경기부양과 함께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다”라고 짚었다. 유럽에서도 중국·러시아에 대한 의존도 심화와 글로벌 공급망 분절화로 인한 피해 등이 이 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려 나서고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그는 비상한 상황에서 경기 부양과 구조개혁을 추진해야 할 새 정부를 항해 통합과 실용의 리더십을 당부하기도 했다. 그는 “충분한 조율과 사회적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좋은 정책이라도 이해집단의 저항에 부딪혀 좌초될 수밖에 없다”며 “새 정부가 구조개혁 과제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리더십을 발휘해 당면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향후 통화정책 방향과 관련해서는 금리 인하기에 있다는 점을 확인하면서도 부동산 시장 동향, 미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 외환시장 변동성 등을 언급하면서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추가 금리 인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빠르게 내리지는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 총재는 “지난해 10월 이후 네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하하며 경기 활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앞으로도 당분간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할 생각”이라면서도, “구체적인 인하 폭과 시점은 향후 거시경제와 금융지표의 흐름을 면밀히 살펴보며 신중히 결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