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백화점 업계 리더들이 한국을 연달아 찾았다. 이례적인 일이다. 과거 판매 효율에만 집중했던 글로벌 백화점 업계가 최근 복합 문화·체험 공간으로 진화를 꾀하고 있는 K백화점에서 리테일 산업의 미래를 찾는 모습이다. 침체기를 겪고 있는 글로벌 백화점 업계가 K백화점의 진화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10일 더현대 서울을 찾은 세계백화점협회 주요 CEO들이 공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현대백화점)
IADS(International Association of Department Stores)는 100년의 전통을 지닌 가장 권위 높은 백화점 업계 대표 협회다. 라우 회장이 방한한 건 지난 10일 현대백화점과 함께 개최한 정례 최고경영자(CEO) 컨퍼런스 참석을 위해서다. 라우 회장 외에도 미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등 IADS 회원사 9개국의 CEO·경영진들이 대거 참여했다.
아직까지 K백화점 중에선 IADS에 가입된 곳은 없다. 각국 대표 기업 1개사만 회원 자격을 얻는데, 신규 회원사가 되려면 기존 회원사들의 만장일치를 얻어야 한다. 이처럼 권위 있는 IADS가 한국에서 CEO 컨퍼런스를 여는 건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왜 이들은 회원사도 아닌 더현대 서울을 방문했을까.
이번에 방한한 IADS 회원사 CEO들의 관심사는 하나였다. ‘오프라인 쇼핑 공간에서 고객에게 어떤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최근 글로벌 백화점 산업은 큰 도전을 맞고 있다. 이커머스(전자상거래)의 급성장으로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데다, 프리미엄과 가성비로 양극화된 소비 패턴, 명품 시장의 위축 등이 겹치면서 침체기를 맞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K백화점은 여전히 성장세를 이어가는 등 기존과 다른 공간 혁신으로 글로벌 백화점 업계와 다른 방향성을 보였다. 특히 더현대 서울은 K백화점 중에서도 공간 혁신에 선도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만큼 관심을 더 많이 받았다. 이번에 IADS CEO 컨퍼런스를 한국에서 연 이유다.
올리비에 브롱 미국 블루밍데일즈 CEO도 더현대 서울을 방문한 자리에서 “고객 휴식 공간과 식음(F&B), 패션 브랜드를 고객 중심으로 적절하게 배치한 게 인상깊은데, 이처럼 백화점내 휴게공간, 공원 등을 조성한 사례는 미국에선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며 “미국은 이익을 낼 수 있는 방식에 집중해 공간을 운영하기 때문에 고객의 쇼핑 경험에 대한 가치는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백화점도 11일부터 이틀간 서울에서 대륙간백화점협회(IGDS, Intercontinental Group of Department Stores)와 공동으로 ‘제16회 IGDS 월드 백화점 서밋’을 열었다. IGDS는 38개국, 40여개 백화점을 회원사로 두고 있고, 롯데백화점은 국내 유일 회원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각국 1개사만 가입이 가능한 IADS와 달리 복수 가입이 가능하다. IGDS 회원사들 역시 K백화점의 성장 전략에 주목했다.
정준호 롯데백화점 대표는 이날 서밋에서 “한국에선 2021~2023년 사이 백화점과 쇼핑몰이 모두 고성장을 기록했고, 특히 백화점은 코로나19 엔데믹 이후에도 2030세대의 유입이 뚜렷이 증가했다”며 “전통적인 리테일 구조를 넘어 새로운 경험을 창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지금은 오프라인 유통의 다음 챕터를 열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롯데백화점은 오는 2030년까지 총 7조원을 투자해 13개의 미래형 쇼핑몰을 만들겠다는 백화점 전략을 제시했다. 공간 혁신을 내세우는 ‘타임빌라스’라는 새로운 쇼핑몰 브랜드를 중심으로 각 쇼핑몰을 지역 랜드마크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쇼핑부터 엔터테인먼트, 문화, 예술 등 다양한 콘텐츠를 복합적으로 결합하는 ‘멀티 콤플렉스’로 차별화한다는 전략이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백화점 업계가 K백화점에 주목하는 건 최근 K문화 확산과 더불어 공간의 차별화를 선도적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전반적인 오프라인 유통의 침체 속에서 아마존 같은 거대 이커머스와 경쟁하기 위해선 백화점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 오는 곳’이 돼야 한다는 것을 K백화점의 성공 전략이 증명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