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돌리고 무역장벽 쌓는 EU…K-방산, 견제 뚫을 비책은?

경제

뉴스1,

2025년 6월 23일, 오전 07:10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천무 다연장 로켓<자료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유럽연합(EU)의 방위비 증액으로 약 500조 원 규모의 새로운 시장이 열리지만K-방산이 넘어야 할 장벽들도 덩달아 늘고 있다.수입 무기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역내 생산 조건을 강화하고 있어서다. 생산 촉진을 위한 정책 자금 지원 대상도 역내 기업으로 한정했다.

K-방산 기업들은 유럽 현지화로 무역장벽을 돌파한다는 전략이다. 방산에서 철수했던 유럽 기업들이 재진출을 서두르고 있는 것도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이다.

폭스바겐 이어 르노도 무기 생산 채비…EU, 조달사업서 역외기업 배제
23일 방산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유럽 자동차 업체들은 무기 생산에 돌입할 채비에 들어갔다. 프랑스 국방부는 최근 르노에 드론 생산 협조를 요청했다. 르노는 지난주 로이터 통신에 보낸 성명에서 국방부의 이런 요청이 있었던 건 사실이라면서 "관련 논의는 진행 중이다. 아직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앞서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국방장관은 이달 초 프랑스 뉴스 채널 LCI와의 인터뷰에서 자국 대형 자동차 제조사와 소규모 방산 기업 간 파트너십을 구축해 우크라이나에 드론 생산 라인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현지 언론들은 프랑스 최대 자동차 회사인 르노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추정했다. 르노 지분의 약 15%는 프랑스 정부가 갖고 있다.

독일 폭스바겐은 자국 방산기업 라인메탈과 손잡고 탱크를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3월 영국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지정학적 상황을 고려할 때 방산에 투자하는 건 매우 올바른 결정이라며 방산 제품을 직접 생산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비슷한 시기 아민 파퍼거 라인메탈 CEO는 폭스바겐의 독일 오스나뷔르크 공장이 탱크 생산에 매우 적합하다고 평가했다. 해당 공장은 극심한 판매 부진을 이유로 독일 드레스덴 공장과 함께 폐쇄될 예정이다.


해외 기업에 대한 비(非)관세 장벽도 쌓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조달 사업에서 EU 역외 기업을 배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지난달 스테판 세루즈네 EU 번영·산업 전략 담당 수석 부집행위원장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EU 공공 조달 규정을 개정해 경제·안보 분야 조달 사업 시 역내 기업에 우선권을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세주르네 부집행위원장이 유럽산 구매법에 담길 구체적인 산업 보호 분야를 명시하진 않았지만, 정부 조달 사업 전반에 걸쳐 한국을 포함한 외국 기업을 배제할 가능성이 높다. 그는 한국수력원자력의 체코원전 계약과 관련해 EU의 심층조사가 완료될 때까지 계약 절차를 중단하라는 서한을 지난달 체코 정부에 직접 보내기도 한 '강경파'다.

지난 3월 EU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유럽 재무장' 정책은 역내 방산기업에 대한 우대를 못 박았다. 재무장 정책은 2030년까지 5년간 8000억 유로(약 1200조 원)를 투입해 EU 회원국의 무기 보유를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6500억 유로는 회원국이 국방비 인상으로 마련해 자국의 무기 구입에 쓰고, 나머지 1500억 유로는 EU가 예산 여유분을 각국에 저리 대출로 지원하는 형태다. 이때 EU 대출을 받으려면 무기 생산 비용의 65%에 달하는 부품이 EU 역내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동유럽서 韓 '천무'·'K2'·'신궁' 생산…현지화로 무역장벽 뚫는다
유럽산 구매법이 회원국 간 합의를 거쳐 내년 시행될 경우 국내 방산업계의 추가 유럽 수주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이에 국내 방산기업들은 유럽 현지에 무기 생산 거점을 구축해 역내 수출 경쟁력을 제고하기로 했다. 그간 '가성비'와 '납기일 준수'로 쌓았던 신뢰에 더해 생산 현지화로 무역 장벽까지 뚫는다는 구상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는 지난 4월 폴란드 최대 방산 기업인 WB그룹과 다연장 로켓 '천무' 유도탄 현지 생산을 위한 합작법인을 설립하기 위한 주요 계약 조건 합의서(텀 시트·Term Sheet)를 작성했다. 합작법인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51%, WB그룹의 자회사인 WB일렉트로닉스(WBE)가 49% 출자해 설립된다. 이를 통해 향후 폴란드군에 공급할 사거리 80㎞급 천무 유도탄(CGR-080)의 현지 생산은 물론 향후 유럽 시장으로의 수출도 추진할 계획이다.

2023년 2월 폴란드 토룬 포병사격장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수출한 K9 자주포가 표적을 향해 포탄을 발사하는 모습<자료사진> (국방부 제공). 2023.2.24/뉴스1

루마니아에는 단독 생산 공장을 건립한다. 공장은 이르면 올해 말, 또는 내년 초 착공돼 2027년까지 준공을 마무리한 뒤 운영될 예정이다. 생산 품목은 지난해 루마니아와 납품 계약을 체결한 'K9' 자주포(54문)와 'K10' 탄약운반차(36대) 등이다. 루마니아 공장이 설립되면 호주 H-ACE에 이은 회사의 두 번째 해외 공장이 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유럽 생산 거점 확보 등에 투자하기 위해 약 2조 91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오는 7월 단행할 예정이다.

현대로템(064350)은 지난해 7월 폴란드 국영방산그룹 PGZ와 폴란드형 'K2' 전차(K2PL) 생산·납품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신규 컨소시엄 합의서를 체결했다. 합의서에는 폴란드와 K2 전차 2차 계약 체결 시 일정 비율을 PGZ에서 생산하는 방안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납품 전량을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한 1차 계약(2022년 체결)과 대조적이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당사와 PGZ 간 컨소시엄 체결은 현지 전차 생산 역량을 구축하고, 적기 납품을 위한 협력 관계를 형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LIG넥스원(079550)은 지난 2월 루마니아 국영방산기업 롬암과 대공미사일 분야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앞서 LIG 넥스원은 2023년 휴대용 지대공 유도 무기 '신궁'을 루마니아에 수출한 바 있다. 이번 MOU를 통해 향후 대공 미사일 개발과 함께 미사일 현지 생산을 추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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