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비은행 스테이블코인 발행 허용시 美처럼 '만장일치'로"

경제

이데일리,

2025년 7월 06일, 오후 05:57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한국은행이 비은행 기관에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할 땐 한은을 포함한 관계 기관의 만장일치 결정을 거치는 방안을 정부에 제시했다. 비은행권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원천적으로 막지는 안되 ‘진입장벽’을 세우자는 것이다.

이 총재는 지난달 2일 ‘BOK 국제컨퍼런스’에서 크리스토퍼 월러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와 대담 중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도입과 관련 “비은행 기관도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 전에 이것(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자본통제를 우회하는 방향으로 갈 것인지에 대해 우리는 더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AFP)


◇ “비은행 스테이블코인 발행 허용하되 심사 강화”

6일 한은과 정치권에 따르면 최근 한은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관련 심사 단계에서 중앙은행을 포함해 관련 기관 간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국정기획위원회에 공식 전달했다.

지난달 미 상원을 통과한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령인 지니어스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스테이블코인 인증심사위원회’(SCRC·Stablecoin Certification and Review Committee)와 비슷한 정책기구를 구성하자는 내용이다.

SCRC는 재무장관(의장),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감독부 의장 또는 부의장,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의장으로 구성된다. 위원회는 스테이블 코인 발행 승인부터 심사할 권한을 갖는다. 특히 비금융 분야에 주로 종사하는 상장기업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려면, 만장일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는 대형 비금융기업이 무분별하게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 금융 불안정을 높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밖에도 스테이블코인 규제 관련 감독과 인증 기능을 수행한다.

한은은 자본 규제나 외환 규제가 없는 미국에서도 기존 은행 시스템의 건전성과 안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SCRC를 두려고 한다는 점을 들어, 우리나라도 발행 단계부터 안전장치를 둘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한은 관계자는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통화정책, 금융안정, 지급·결제 등에 영향을 미치다 보니 이런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며 “SCRC 같은 기구를 구성해서 유관 기관이 구체적인 부분도 긴밀히 협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은행권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주장했던 기존 한은의 신중론에서는 한발 나아간 것이다. 이창용 총재가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비은행권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게 해달라는 핀테크 등의 요구를 거론하면서 “새로운 수요를 고려할 때 우리 계획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한 점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미지= 챗GPT)


◇ 한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관련 입장 적극 표명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원화를 기초 자산으로 발행되는 디지털 화폐다. 원화 가치에 1대 1 연동시키는 구조로, 발행된다면 법정 통화와 비슷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기간에 국내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은은 논의가 본격화한 초창기부터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가상자산이 아닌 통화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을 들어 한은이 발행 및 감독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가상자산 주무부처는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지만,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통화의 대체재 성격을 갖는 만큼, 통화 당국인 한은이 빠져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새 정부 들어 기재부와 금융위의 조직 개편 이슈 등으로 주무 부처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한은이 계속해서 스테이블코인 규제 관련 제언을 하고 우려를 표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은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과 관련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자본 유출 및 외환시장 충격 가능성 △‘코인 런’ 등 금융안정성 훼손 △통화정책 유효성 저하 등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환전 수단으로 쓰이면서 해외로 대규모 자금이 빠르게 유출되거나, 대규모 상환요구가 발생할 경우 금융시스템 전반의 불안정성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무분별하게 발행돼 시중 유동성이 급증하면 통화 신뢰성이 저하돼 통화정책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점이다.

한편에서는 화폐주조 차익 즉, ‘시뇨리지’를 민간이 가져가는 점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시뇨리지는 본래 국가(중앙은행)가 통화 발행을 통해 얻는 공공수익이다. 민간이 이를 취득하게 되면 공공재로서의 통화 발행 이익이 사적 기업의 이윤으로 이전된다. 한은의 경우 매년 순이익에서 법인세를 우선 낸 후 법정적립금(30%)과 공적 기금 출연 금액을 제외한 나머지 이익은 모두 세금으로 낸다. 기관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제외한 한은 수익금은 세금으로 쓰이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