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동 현대 아파트에 살면서 같은 아파트 큰 평형을 매수하거나 잠실동 갤러리아팰리스에 살면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매수하는 등 강남3(강남·서초·송파구)·용산구 내에서도 최상급지로 이동하려는 수요가 많았다. 일부는 현금으로, 일부는 대출을 조달해 상급지에서 최상급지로 이동, ‘그들만의 리그’가 강화된 모습이다. 6.27 초강력 대출 규제가 나오면서 대출이 6억원으로 제한, 최상급지로 이동하려는 수요가 일부 제약되겠지만 상급지 이상의 집값을 잡긴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부가 6·27 대책을 통해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한도를 6억원으로 낮추면서 서울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고 있는 가운데 지난 달 30일 서울 용산구의 한 공인중개사에 아파트 매물 시세표가 붙어 있다.(사진=방인권 기자)
◇17건 중 10건은 강남에서 강남으로
6일 이데일리가 올해 들어 6월 말까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등록된 서울 강남구 70억원 이상 고가 아파트 거래에서 소유권 이전 등기가 완료된 20건 중 소유권 일부만 이전된 사례를 제외한 17건을 분석한 결과 강남3·용산구 내에서 강남구 최상급지로 이동한 사례가 14건으로 집계됐다. 강남구에서 강남구로 이동한 사례도 10건이나 됐다.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가 해제됐던 2~3월 중 서울 성동구, 대구 수성구, 대전 유성구에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등을 80억~90억원 가량 주고 매입한 사례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상급지에서 최상급지로 이동하려는 수요가 많았다.
17건 중 주담대가 ‘0’인 4건을 포함해 9건이 주담대 비중이 집값의 30%대 이하였다. 어느 정도 현금자산을 확보한 상태에서 최상급지 구매가 이뤄졌다는 얘기다. 강남 아파트 가격이 오른 것 대비 대출은 덜 늘어났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의 강남구 주담대는 올 5월 누적 1.5%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강남 아파트 가격은 5.2% 올랐다.
마포·성동구 등 준상급지에서 강남3구 등 상급지, 강남3구 내에서도 최상급지로 이동하려는 수요가 빠르게 집중되면서 강남 집값이 빠르게 올랐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198㎡는 2월 말 90억원에 거래됐으나 두 달 후인 4월 말 105억원으로 무려 15억원이나 급등했다.
이에 자금력이 큰 50대의 강남구 매입 비중이 4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의 소유권 이전(매매) 등기 현황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강남구 아파트 등 집합건물의 50대 소유권 이전 비중은 전체(5784건)의 24.2%(1397건)를 차지해 집값 급등기였던 2021년(24.3%)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30대 비중은 20.8%(1201건)에 그쳐 2021년(20.5%) 이후 가장 낮았다. 단기 급등세에 포모(FOMO·공포감에 매수) 심리가 작동하며 생애최초 주택으로 바로 강남구로 입성한 사례가 22.7%(1312건)로 작년(21.6%)보다 높아졌다.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등에서 자유로운 외국인들의 강남 매입 비중은 올 들어 1.1%(65건)로 작년(1.5%)보다 소폭 줄었지만 외국인 매수자 중 자금력을 갖춘 미국인의 매수 비중은 60%로 2018년(67.9%) 이후 7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래픽=김일환 기자)
◇ ‘대출 규제’로는 최상급지 이동 수요 못 막는다
수도권 주담대 6억원 한도로 인해 30억원씩 빚을 내 최상급지로 이동하려는 수요는 일부 제약될 수 있지만 이는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남구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50% 정도인데 70억원 이상의 아파트를 매입하면서 LTV비율을 꽉 채워 주담대를 받은 사례는 17건 중 4건에 그쳤다.
양지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터 전문위원은 “소득만 높고 현금이 없는 경우엔 최상급지 이동이 어려워 조금 타격이 있을 수 있지만 아주 일부분”이라고 말했다. 강남을 대체할 만한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상급지에서 최상급지로 이동하고 싶은 마음까지 꺾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양 전문위원은 “이번 대출 규제는 현금부자만 집을 사라는 메시지”라며 “과거엔 초고가 아파트도 거래가 자주 이뤄졌지만 현금부자들은 (집을) 희소성, 상징성, 나를 보여주는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매물 자체가 나오지 않아 수요만 있고 공급은 거의 없는 시장”이라고 짚었다.
대출 규제는 편법, 불법 대출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토허제가 시행됐던 1월, 40대 오 씨는 압구정 한양아파트를 77억원에 매입하면서 10억원 가량 주담대를 받았는데 한 달 후 오 씨가 운영하는 회사는 해당 아파트를 담보로 60억원, 석 달 후엔 10억원 가량 추가 대출을 받았다. 77억원 가량의 아파트를 사실상 대출로 조달한 것으로 추정됐다.
집값 안정을 위해선 정책의 접근법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양 전문위원은 “지금 규제는 ‘똘똘한 한 채’ 강남을 띄워 주는 것처럼 보이는데 강북에도 용적률·건폐율을 대폭 완화해 사업성이 높은 공급 대책을 내야 한다”며 “과거 뉴타운 개발 시절, 신혼부부나 자녀 있는 부부들이 많이 들어갔다. 결국 인프라 등으로 주거 만족도가 높은 공급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주택 수에 따른 규제를 깨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똘똘한 한 채’를 깨기 위해선 주택 수에 따른 규제를 없애야 한다”며 “이를 통해 지방으로 자금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